날은 무덥고 삶은 퍽퍽하다. 이럴 땐 책을 끼고 사는 게 상책이다. '방콕'하면서 책만 보면 너무 고적하고 무료하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데카르트가 미리 답을 해주었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몇백 년 전에 살았던 가장 훌륭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책에 묻혀 지내는 것은 은둔형 외톨이가 아닌 왕성한 사교이고 소통인 셈이다.
새로운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읽었던 책을 다시 봐도 좋다. 일독한 책을 거듭 읽게 되는 경위는 여러 가지겠으나 가장 높은 확률은 나이 탓, 아니 나이 덕(?)이다. 예컨대 '논어'를 20대에, 그저 그런 교양서로 여겨서 심드렁하게 한 번 봤더라도, 50대에 접어들면 문득 어떤 구절에서 새로운 감흥과 안목이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연륜이 독서의 깊이를 더해주니 다시 읽지 않겠는가.
또 다른 상황도 있다. 고전은 일단 적게는 100, 200년, 많게는 1000, 2000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이본(異本)이 출현한다. 이중환이 쓴 '택리지'가 그런 사례다.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가 정본을 출간하며 소개한 바로는, "저자의 손에서 1751년 초고본, 1756년에 개정본이 나왔고, 저자 사후 200여 종의 이본이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안 교수의 정본 작업은 교감(校勘)의 중요성을 환기(喚起)한 의의가 크다. 기왕에 문고본 한 권을 소장하고 있었지만, '정본 택리지'를 다시 구매했다. 기껏 보는 책이 오류투성이라면 헛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도 다시 읽게 된다.
기존과 전혀 다른 판본을 접하는 돌발 사태도 있다. 요즘 영화 '한산-용의 출현'이 인기몰이 중이니 '손자병법'을 일례로 들겠다. 전통 학문이 몰락하고 의고(疑古) 열풍이 극성이던 20세기 초반 중화민국 시기, 이 책은 느닷없이 가짜 시비에 휘말렸다. 아예 사마천이 쓴 '손무열전'의 내용도 허구이고, '손자'라는 인물도 가짜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다 1972년, B.C. 2세기 조성된 한묘(漢墓)에서 죽간(竹簡)에 써진 판본이 발견됐다. 위작설은 일순간 사라지고 그때부터는 죽간본과 통행본의 우열 비교로 논쟁이 옮겨갔다. 중국 본토는 물론 일본에서도 죽간본 열풍이 불었다.
'죽간본 손자'는 무심히 관행적으로 읽어왔던 기존 판본과 목차부터 다르고 내용도 주요 대목에서 엇갈림이 크다. 이런 경우에는 약간의 팁이 필요하다. 그런 차에 중국 고문헌 전문가인 구석규(裘錫圭) 교수가 '중국출토고문헌십강(中國出土古文獻十講)'에서 죽간본이 통행본보다 우월한 부분을 조목조목 설명하는 내용을 읽고 마음이 동했다. 끼어 맞추기식 해석을 했던 기억이 나서 민망할 정도였다. 스스로도 "천리를 가도 힘들지 않다"는 통행본 글귀가 죽간본에는 "천리를 가도 두렵지 않다"로 되어 있음을 보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디테일은 마니아의 자존심이니, 결국 죽간본과 관련 서적을 대량 구비하게 되었다. 이렇게 팬심이 구실이 되기도 한다.
기왕 '손자병법'을 언급한 김에 책을 더 소개해 본다. 조선 말 금위대장을 지낸 조희순이 쓴 '손자수(孫子髓)'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기인(畸人)과 지사(志士)들이 가을밤 고요할 제, 낙엽이 창문을 때리고 대나무의 서늘한 기운이 문득 침범해오면, 근심스레 등불 앞에서 칼을 보며 술잔을 기울인다. 옛사람의 책을 골라 몇 편을 읽다가 끝내 책상을 치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슴의 답답한 기운을 풀려고 하니, 나는 그들이 이때 읽는 책이 반드시 병서(兵書)임을 아노라."
더위가 가실 만한 이런 운치까지도 덤으로 생기니 역시 독서가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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