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출시한 게임 '우마무스메'
일본과 차별적 운영에 이용자 불만
불통·침묵에 마차 시위까지 등장
"일본과의 차별대우, 한국유저 무시하나."
지난달 29일 국내 굴지의 정보통신(IT) 기업들이 즐비한 경기 성남시 판교 중심가에 때 아닌 마차가 등장했다. 6월 출시한 육성시뮬레이션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우마무스메)의 이용자들이 국내 퍼블리싱을 맡은 카카오게임즈의 운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이 게임의 모티브가 된 실제 경주마를 카카오게임즈의 본사 앞으로 보낸 것이다. 그동안 불만이 누적됐던 게이머들의 경고이자 항의의 표시였다.
게임 밖 세상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이머들. 그들은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국내 게임업계 트럭 시위의 시작
게이머들이 게임 운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차원에서 시위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페그오(페이트 그랜드오더)' 사태를 시작으로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바람의나라 : 연', '클로저스' 등을 서비스한 게임사들이 운영 문제로 이용자들이 보낸 트럭을 마주해야 했다.
트럭 시위는 시위 문구가 적힌 전광판을 실은 소형 트럭을 시위 대상이 있는 장소로 보내는 시위 방식이다. 별도의 인원 없이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데다 눈에 잘 띄고 편리하다 보니 효율적인 시위 방식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게이머 입장에서도 트럭 시위는 인터넷상의 여론을 현실에서 가장 점잖으면서도 눈에 띄게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이번 우마무스메 마차 시위는 게임업계 트럭 시위의 시발점이 된 지난해 페그오 사태와 상당히 유사하다. 페그오 또한 우마무스메처럼 일본에서 개발돼 국내 회사가 국내 퍼블리싱을 맡은 게임으로, 퍼블리싱 과정에서 일본과 국내 서비스의 차별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됐다.
퍼블리싱 계약과 '미래시(未來視)'
일반적으로 게임은 △게임 기획 및 개발 △유통과 배급, 크게 두 가지 과정을 거쳐 시장에 나온다. 개발사가 말그대로 게임을 만드는 회사라면, 퍼블리셔는 이미 만들어진 게임을 아름답게 포장해 유통하는 회사다. 서버 등 서비스 인프라 구축부터 홍보, 마케팅, 번역, 이벤트 등 서비스와 관련한 모든 사항을 책임지고 운영해야 한다. 특히 현지화가 중요한 해외 진출의 경우 퍼블리싱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 제작 노하우와 뛰어난 스텝진을 갖춘 영화 제작사가 영화를 만들고, 세계각지에 유통망을 갖고 있는 배급사가 홍보와 배급을 맡는 영화 제작 방식과 비슷하다.
우마무스메 또한 카카오게임즈가 게임 개발사인 일본 사이게임즈와 국내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수입한 게임이다. 게이머들은 이렇게 해외에서 들여온 게임을 소위 미래시(未來視·다른 나라에 먼저 출시돼 미래를 알 수 있는 게임)라 부른다. 선출시 국가에서 적게는 1년, 많게는 수년간 서비스를 해온 게임인 만큼 일종의 '족보' 개념으로 서비스 방향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은 이를 토대로 과금 계획을 세우거나 추가될 콘텐츠에 대비한다.
문제는 미래시가 가능한 게임은 국내와 해외의 운영 방식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동안 불만이 쌓여왔던 우마무스메 유저들이 결국 폭발한 계기도 이 때문이었다. 일본 서버가 우마무스메의 핵심 콘텐츠인 '챔피언스 미팅' 공지를 이벤트 시작 3주 전부터 안내해 이용자들의 준비 기간을 준 것과 달리, 한국 서버는 개최 3일 전에 이를 통보했다.
챔피언스 미팅은 기간 한정으로 열리는 이벤트로 보상 규모가 매우 큰 행사다. 공략을 위한 사전 작업만 약 한 달이 필요한데, 사실상 이 게임의 엔드 콘텐츠(최종 콘텐츠)다. 유저들은 이외에도 게임 내 필수 아이템을 확정적으로 뽑을 수 있는 'SSR 확정 메이크 데뷔 티켓' 수령 기간을 일본(1년)과 달리 1달로 대폭 단축한 점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 유저와 차별을 받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게임의 완성도 만큼 '운영'과 '소통'도 중요해
뒤늦게 카카오게임즈가 진화에 나섰지만 계속된 무대응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사과까지 겹쳐 유저들의 공분은 더 커지고 있다.
우마무스메 유저들은 2일 '최후통첩'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규탄 집회와 불매 운동, 집단 소송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5일까지 카카오게임즈가 △대표의 공식사과 △간담회 개최 등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게임 내에서 결제 금액을 환불받기 위한 집단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유저들이 인증한 결제 금액만 2일 기준 70억 원을 넘어섰다.
이처럼 다른 유통업계보다 유독 게임업계에서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게임이라는 콘텐츠의 특성 때문이다.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은 패키지 게임처럼 완성된 형태의 상품으로 발매되지 않는다. 출시 이후에도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콘텐츠가 추가되며, 유저와의 소통을 통해 게임의 방향성이 수정되기도 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운영을 못하면 외면을 받고,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 수정해나가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 게임이다. 한때 침체기에 빠졌던 롤플레잉게임(RPG) '로스트아크'가 금강선 전 총괄디렉터를 필두로 한 유저친화적 운영으로 전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엇보다 게이머는 자신들이 플레이하는 게임 자체에 애정을 갖고 있다. 게임사의 운영 방식에 불만이 있더라도 손바닥 뒤집듯 다른 게임으로 옮겨가지는 않는다. 2003년 출시한 메이플스토리가 수많은 논란에 흔들리면서도 19년간 게이머의 사랑을 받으며 넥슨의 든든한 캐시카우(창출원) 역할을 할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게임계 트럭 시위를 촉발시킨 기념비적인 게임이었던 페그오의 유저들은 최근 운영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커피 트럭을 보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1년 만에 항의를 위한 '시위 트럭'이 감사를 보내는 '커피 트럭'으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페그오의 서비스를 맡았던 넷마블은 트럭 시위 이후 수차례의 간담회와 서비스 개선을 통해 민심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당장 등을 돌릴 것 같던 게이머도 게임사가 진정성 있게 소통에 나선다면 다시 돌아올 준비가 돼있다. 지난해 트럭 시위 열풍 이후 게임산업 전체가 사용자 친화적인 형태로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는 가운데, 벼랑 끝에 선 카카오게임즈 또한 화난 유저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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