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패션 칼럼니스트 박소현 교수가 달콤한 아이스크림 같은 패션트렌드 한 스쿱에 쌉쌀한 에스프레소 향의 브랜드 비하인드 스토리를 샷 추가한, 아포가토 같은 패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요즘 거리를 보면 유행은 역시 시계 톱니바퀴처럼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세기말 전후 강남 일대 오렌지족의 전매특허 같았던 미국 브랜드 폴로(Polo)의 말 무늬 로고의 니트 상의를 입은 젊은이들을 자주 마주치기 때문이다. 패션계에서도 다소 어려웠던 랄프로렌(Ralph Lauren)이 자신의 여러 하위 브랜드들을 통폐합해 다시 궤도에 올랐다고 보고 있다. 로렌가(家) 전성시대가 다시 찾아온 것 같다고 볼 수 있으나, 좀 더 자세히 보면 로렌은 로렌인데 랄프 로렌의 조카인 그렉 로렌(Greg Lauren)이 대세이다.
그렉 로렌의 유행을 보면, 마치 단순한 시계 톱니바퀴를 모아 용, 말 등의 공예작품을 만드는 수 비어트리스(Sue Beatrice)가 떠오른다. 그리고 전 세계 어머니들이 가장 싫어하는 자식들 패션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온 동네를 청소하고 다니는 힙합 바지에 이어서 넝마를 뒤집어쓴 각설이 같은 그런지 룩(Grunge Look)이 새로이 귀환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런지 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의 언더 록 신(Under Rock Scene)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시절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또는 그런지 록(Grunge Rock)과 이를 상징하는 X세대의 아이콘인 그룹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연인이자 로커인 코트니 러브도! 이 둘의 상징성은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 사진 작품인 '피에타-Courtney Love: Pieta(Heaven to hell)'처럼 X세대들의 향수를 박제한 것 같다.
커트 코베인은 언제 잘랐는지 혹은 언제 감았을지 모를 살짝 떡지고 헝클어진 긴 단발머리에 해질 듯 물이 빠진 청바지, 목이 늘어난 티셔츠, 형제들에게 두 번을 물려받은 듯한 낡은 체크 셔츠를 입은 로커였다. 엘리트주의와는 거리가 먼, 다소 염세적인 그의 눈빛에 대중은 열광했고, 그가 입었던 그런지 룩은 전 세계 어머니들에게는 미움을 받았을지언정 X세대 일탈의 상징이 되었다.
다만, 그렉 로렌의 유행은 쳇바퀴 돌듯 트렌드로 찾아온 그때의 그런지 룩과 조금 다르다. 수 비어트리스의 시계 톱니바퀴 공예작품처럼, 그렉 로렌의 그런지 룩은 지속가능성과 업사이클링에 폴로, 랄프로렌이 두어 방울 추가된 클래식한 듯 럭셔리한 그런지 룩이다.
여러 개의 청바지, 니트, 체크 셔츠, 티셔츠 등을 자르고 이어 붙여서 만든 기모노 스타일의 그렉 로렌을 보자면 "이런 옷을 이 가격에 팔다니,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이일 것이다(그가 외국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었는지 'Who the F*** Is Greg Lauren?'이란 제목의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옷은 꽤 멋스럽고, 그는 잘생긴 배우 출신이다. 2016년 뉴욕 패션위크에서 디자이너로 데뷔하기 전에는 화가였다고 하니 다재다능한 인물이며, 시류를 읽어내는 안목 또한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X세대들의 기억할 만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면 그의 아내는 논란의 1990년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였던 쇼걸(Show girls)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버클리(Elizabeth Berkley)이다.
1970년생인 그렉 로렌은 한국 나이로 치면 53세이다. 50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그를 보면 한국의 X세대들에게도 그 시절 감성으로 다시 해볼 만한 그것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시계 톱니바퀴로 용을 만들 정도의 변형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추억은 이제 비즈니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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