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감축도시 한달살기]
⑪뉴욕시의 재생에너지 구매
캐나다의 수력발전 전기 전달받기로
545㎞ 이르는 지하 송전선 건립계획
탄소중립 늦춘 결과, 비용과 대가 커져
지난 4월 미국 뉴욕주는 놀라운 발표를 하나 했습니다. 뉴욕시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기 위해 캐나다 퀘벡의 수력발전소로부터 재생에너지를 구매하고, 그것을 끌어오기 위한 송전선을 건설하도록 승인했다는 것이었죠.
캐나다 퀘벡에서 뉴욕시까지 거리는 자그마치 545.56㎞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 325㎞보다도 67%나 더 길죠. 오로지 전력망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해 545㎞에 달하는 송전선을 건설하겠다는 겁니다. 그것도 환경 영향을 고려해서 송전탑을 짓지 않고 땅과 강 밑에 묻는 방식으로요.
건설비만 약 45억 달러(약 6조2,707억 원)입니다. 올해 가을 첫 삽을 뜰 예정인데요.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수력) 비율이 고작 4.5%에 불과하고,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의지도 약하죠. 부럽기도 하고, 쉬이 상상하기도 어려운 풍경입니다.
하지만 기자가 지난달 방문한 뉴욕의 분위기는 그리 간단치만은 않았습니다. 좀 더 빨리 탄소중립에 대비했더라면,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었다는 반성이 있었죠.
뉴욕의 한 환경운동가는 말했습니다. "탄소중립을 일찍 시작했다면 더 안전하고 정의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고 당면한 문제인 만큼 최대한 빨리, 확실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이죠.
탄소중립 대비는 늦으면 늦을수록 더 큰 대가와 비용이 든다는 교훈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 그곳을 찾아가 봤습니다.
뉴욕, 8년 내 재생에너지 비중 70%로 늘린다
지난달 13일, 미국 뉴욕시 퀸즈 아스토리아 지역에서 차를 탔습니다. 허드슨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6시간가량 달립니다. 도시를 지나 옥수수밭이 나오고, 다리도 건너고, 마을도 6개나 지나고, 산에도 오릅니다. 오후에 출발해 벌써 해가 저무는데, 아직 전체 여정의 절반도 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정이 너무 까마득해 도무지 더 갈 엄두가 안 납니다.
앞서 언급한 송전선 부지를 따라가본 것입니다. 이 송전선의 이름은 '챔플레인-허드슨 파워 익스프레스(Champlain-Hudson Power Express·CHPE)'입니다. 캐나다 퀘벡의 '챔플레인' 호수를 지나 미국 뉴욕의 '허드슨'강을 따라 뉴욕시까지 이어지는 '전기 고속도로'라는 뜻입니다.
이 송전선은 뉴욕주의 전력을 탄소 배출 없이 사용하기 위해 도입됐습니다. 이른바 '전력망 탈탄소화'입니다. 뉴욕주는 2019년 기후법을 통과시켰는데요. 2018년 기준 26.8%인 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70%로 늘리고, 2040년엔 전력 100%를 탈탄소화하겠다는 목표가 담겼습니다.
이 목표 달성에서 가장 큰 문제는 뉴욕시입니다. 뉴욕시는 뉴욕주 면적의 약 0.5%에 불과하지만, 뉴욕주 전체 전력의 60%를 소비합니다. 그중 85%는 화석연료에서 나옵니다. 반면, 땅과 바람이 풍부한 뉴욕주 북부 지역에서는 전기 약 88%가 재생에너지에서 나옵니다.
아주 작은 땅에서 아주 많은 전기를 아주 더럽게(탄소를 많이 배출하며) 사용하는 것이지요. 뉴욕주가 8년 안에 재생에너지 비율을 70%로 올리기 위해서는, 뉴욕시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50%포인트 가까이 올려야 합니다.
캐나다 수력발전소서 25년간 재생에너지 구매
뉴욕주가 뉴욕시 전력망을 위해 진행 중인 정책은 크게 두 개입니다. 하나는 뉴욕주가 보유·확대하고 있는 재생에너지를 뉴욕시에 보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클린패스 뉴욕(Clean Path NY)이라는 지하 송전선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7년에 완공되어 약 1,300MW 규모의 태양광·풍력 에너지를 보낼 예정으로, 뉴욕시 재생에너지 비중을 16%포인트 높입니다. 2030년까지 뉴욕시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50%포인트만큼 늘려야 하니, 여전히 약 34%포인트가 남아 있죠.
뉴욕주는 이 중 20%포인트를 캐나다에서 사 오기로 결정합니다. 지난해 9월 캐나다 국영 수력발전사 ‘하이드로-퀘벡(Hydro-Québec)’의 1,250MW 규모 수력발전소로부터 25년간 전력을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한 겁니다. 매년 10.4테라와트시(TWh)의 전기를 전송합니다.
이는 지난해 한국 신·재생에너지 발전량(43.09TWh)의 24.1%에 달하는 양입니다. 캐나다는 에너지의 60%가량을 수력발전에서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력발전소에서 사 온 전기를 전송하는 게 CHPE입니다. 직경 5인치(12.7㎝) 크기의 고압직류송전선(HVDC) 2개가 뉴욕시 퀸즈 아스토리아 지역의 변전소로 전기를 옮깁니다.
"뒤늦게 시작해 더 큰 비용 치르는 것"
사실 CHPE는 2008년부터 논의되던 프로젝트입니다. 그러나 대규모 토목공사에 따른 환경파괴나 경제성을 이유로 오랜 기간 채택되지 못했죠. 최근 기후위기 대응의 데드라인이 눈앞에 다가오자, 뒤늦게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추진됐다는 것이 뉴욕 환경단체의 전언입니다.
특히 지난해 뉴욕주는 허드슨강 유역 노후 발전소인 인디언포인트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했는데요. 뉴욕시 전력의 약 25%를 담당하던 발전원이 꺼지면서, 그 빈 공간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가 대체했습니다. 2019년의 탈탄소 선언이 무색해진 것이죠.
미국의 환경 전문 온라인 매체 그리스트는 이런 상황에 대해 "규제 당국이 단기간의 해결책을 원했다"며 "뉴욕시에 CHPE는 이 문제를 해결할 깔끔한 해결책처럼 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CHPE를 둘러싼 환경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송전선이 강 밑을 지나며 수중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리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뉴욕의 대표적 환경단체인 리버키퍼(Riverkeeper)는 CHPE에 대해 "송전선이 물고기의 방향 감각을 방해하는 전자기장을 생성한다"며 "멸종위기종인 철갑상어를 포함한 수중 생물을 대상으로 무모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캐나다 수력발전소가 지역 원주민의 터전을 앗아간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습니다. 그간 하이드로 퀘벡의 수력발전소 대부분은 캐나다의 원주민 거주지에 건설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 전력 거래로 새로운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지는 않습니다. 지난해 하이드로 퀘벡 측이 '풍력·태양광 발전 단가가 더 싸져서 수력 발전을 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로 추가적인 댐 건설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죠.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이 계약을 시작으로 미국의 더 많은 주가 캐나다의 수력 에너지를 원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수요가 늘어나면, 자본의 논리에 따라 발전소가 더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지난해 5월 캐나다의 원주민 단체들이 뉴욕시청에 "뉴욕주와 수력발전소 간 전력 거래가 원주민의 삶과 생활 반경에 심각한 피해를 일으킬 수 있음을 강하게 성토한다"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죠.
진작 시작했더라면…
그러나 CHPE는 다수의 시민단체·기업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최종 승인을 거쳐 추진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뉴욕주 공공서비스위원회(PSC)가 진행한 공청회에서 약 4,000개의 지지 성명이 쏟아졌죠. 노동조합·환경단체·교육기관·산업계 등입니다.
뉴욕의 환경단체 '변화를 위한 뉴욕 공동체(New york Commmunities for Change·NYCC)' 또한 CHPE의 지지그룹 중 하나입니다. 이 단체는 논쟁 초기에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캐나다까지 갈 것 없이 뉴욕주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수 없을지 고민했죠.
그러나 그간 해결하지 않고 방치한 재생에너지 관련 각종 규제와 정치적 논란 탓에 CHPE 외에는 빠르게 재생에너지를 늘릴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호세 곤잘레스 NYCC 시니어 디렉터는 "아직도 뉴욕주의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금지하는 규제를 갖고 있다"며 "주 면적의 0.5%밖에 안 되는 뉴욕시를 위해 99.5%가 전력을 대줘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뉴욕주에 재생에너지가 확대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CHPE가 더 확실하고 빠른 대안이라는 것이죠.
송전선 건설을 맡은 트랜스미션디벨로퍼스(Transmission Developers Inc·TDI)는 환경 논란이 없도록 송전선 건설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입니다. TDI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CHPE는 뉴욕주의 엄격한 환경 평가를 통과해 승인을 받았다"며 "건설의 매 단계에서도 환경 관리·건설 계획을 평가받는 등 환경 영향에 유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혼란 탓에 취재를 마친 뒤에도 계속해서 찜찜함이 남습니다. CHPE를 완벽한 재생에너지 조달 사례로 보기엔 의문이 남죠.
세스 랙스먼 그린피스USA 기후 캠페이너는 "CHPE 논란은 뉴욕주가 재생에너지 보급을 미뤄온 결과"라며 "기후위기 대응을 더 빨리 했더라면 뉴욕주 내에서 재생에너지를 보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답답한 건 한국은 에너지 전환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 듯 보인다는 겁니다. 국내 기후변화 싱크탱크 사단법인 넥스트에 따르면, 한국의 태양광·풍력 발전 설비 잠재량은 790GW(태양광 480GW·육상 풍력 40GW·해상 풍력 270GW)나 됩니다. 지난해 국내 누적 재생에너지 설비는 약 29GW(태양광 21GW·풍력1.7GW)였죠.
그러나 이를 실현할 정교한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부 허사입니다. 2020년 전 세계 전력의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수력) 비율은 28.1%였던 반면, 같은 해 한국은 4.5%에 불과했죠. '대응이 늦어질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뉴욕주의 경고에 더 초조해지는 이유입니다.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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