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함께하는 직업] <6> 안내견 지도사 홍아름씨
편집자주
동물을 위해 일하는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수의사, 사육사, 훈련사 등은 동물 관련 쉽게 떠올리는 직업이지만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실제 영화감독, 출판사 대표, 웹툰 작가 등 다른 직업을 갖고 동물을 위해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동물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만나 동물 관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14일 오후 1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지하철 수내역. 안내견임을 알리는 노란색 조끼와 하네스(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이 서로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연결한 장비)를 착용한 래브라도 레트리버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한 달 전 안내견 시험에 최종 합격한 '고리'(2세)다. 고리는 최종 관문을 통과했지만 시각장애인 파트너를 만나기 전까지 기량이 녹슬지 않도록 매일 맹연습 중이라고 했다. 안내견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몹시 의젓해 보였다. 역 근처 공원으로 가는 길 횡단보도 둔덕, 볼라드(차량 진입방지 말뚝)가 나타날 때마다 곧바로 멈춰 섰다. 시각장애인에게 주의를 주고 장애물이 있음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다.
고리가 안내견 역할을 잘 해낼 때마다 "옳지, 잘했어" 폭풍 칭찬이 이어졌다. 고리를 예비 안내견으로 이끈 이는 올해 20년 차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안내견 지도사인 홍아름(39)씨다. 홍씨가 지금까지 배출한 안내견만 40여 마리. 2020년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입성해 유명해진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안내견 '조이'도 그가 배출했다. 홍씨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안내견도 환경과 상황에 따라 실수할 수 있고, 놀라기도 한다"며 "하지만 중요한 건 회복력이 빠르다는 것이다"고 했다. 이어 "이들의 평정심을 닮고, 배우고 싶다"며 "안내견은 내 인생의 스승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내견 교육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파트너 교육도 중요"
-통계청 한국표준직업분류에는 안내견 양성을 위한 훈련사도 '반려동물 훈련사'에 포함돼 있다. 안내견 훈련사, 조련사 등으로 불리는데 어떻게 불리고 싶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는 안내견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교육 담당업무가 있다. 안내견 교육도 중요하지만 안내견과 함께하는 파트너 교육도 그만큼 중요하다. 파트너를 '준훈련사'라고 부르는데 해외에서는 '블라인드 핸들러'(blind handler)라고 얘기할 정도다. 개만 잘해서, 파트너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라 팀워크가 중요하다. 파트너 교육을 더 잘하기 위해 국가공인 시각장애인 보행 지도사 자격을 따기도 한다. 안내견 교육 담당은 그동안 훈련사라고 불렸는데, 아무래도 훈련이라는 단어에 강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내견 지도사라고 불리면 좋겠다."
-안내견 지도사가 된 계기는.
"처음부터 안내견 지도사를 꿈꿨던 건 아니다. 대학에서는 컴퓨터 관련 학과를 전공했다. 2002년 당시 TV동물농장에 나온 에버랜드 사육사를 보고 무작정 사육사가 되고 싶었다. 마침 에버랜드 물개 조련사 채용 공고가 떠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상심하고 있던 차 안내견학교로부터 '같이 일해볼 생각 없느냐'는 제안을 받아 근무하게 됐다."
-안내견 지도사는 어떤 일을 하나.
"10년 동안 견사 관리와 번식∙교배 업무를 하면서 개들이 보내는 신호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안내견 교육을 담당한 지는 10년 됐다. 개들과 생활하면서 체득하게 되는 것들을 교육에 적용하고 있다. 지도사는 한 사람당 평균 4마리를 담당해 오전, 오후 두 번 마리당 30~40분 교육을 한다. 직선보행도 하고 횡단보도도 건너고 다른 개와 사람도 만나며 다양한 환경을 경험하게 한다. 지난해부터는 시각장애인 보행 지도사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안내견 교육에 그치지 않고 파트너를 만나 안내견과 생활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7, 8개월 동안 교육한 안내견과 정들지는 않나.
"당연히 정이 든다. 하지만 4, 5마리를 한꺼번에 교육하므로 아무래도 관심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반면 안내견이 파트너를 만나게 되면 24시간 함께하는 가족이 생기는 거다. 얼마 전 전남 지역에 처음으로 안내견을 보냈다. 파트너도 안내견 태평이도 너무 행복해 보였다. 한 달 뒤 파트너와 안내견을 점검하기 위해 방문하는데 이때 안내견 표정을 보면 얼마나 만족하는지, 적응했는지 알 수 있다."
"안내견 교육의 기본은 폭풍칭찬, 진심 다해야"
-안내견 지도사로 활동하며 좋은 점은.
"안내견도 틀릴 수 있고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하며 무덤덤하게 극복하는 게 안내견에게 가장 필요한 성격인 것 같다.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지만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회복력이 정말 중요하다. 안내견들은 회복력이 뛰어나다. 예비 안내견과 함께하면서 이들의 평정심을 닮으려, 배우려고 노력한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나이들수록 걷는 게 힘들다.(웃음) 체력이 달린다. 하루에 보통 18㎞ 정도를 걸으니 신발이 빨리 닳는다. 특히 여름이 힘들다. 사람도 힘들지만 개도 여름에 취약하다. 여름보다 겨울에 보행교육을 좀 더 길게 하는 편이다. 또 파트너와 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면 시각장애인 보행 지도도 중요한데 시작한 지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다. 파트너분들께 더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안내견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고 있나.
"정말 많이 달라졌다. 어른이 아이에게 '안내견이 지나가면 소리를 내거나 만지지 말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고 알려주는 모습을 많이 본다. 또 공공장소에서 안내견을 거부하면 주변 손님들이 괜찮다고, 입장 가능하다고 말해준다. 이번에 전남 지역에 안내견을 처음 보내면서 파트너와 여러 곳을 가봤는데 다행히 거부한 곳은 없었다. 여전히 지하철을 타면 '누가 개 데리고 지하철 타냐'고 불만을 얘기하는 시민도 있다. 전국에 활동하는 안내견이 70마리로 많지 않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갈등이 있을 때 싸우기보다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안내견 지도사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은.
"안내견 지도사는 시각장애인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안내견과 독립적으로 보행할 수 있게끔 돕는 일이다. 안내견도 힘든 일이 아니라 즐겁게 파트너와 걸을 수 있도록 교육한다. 이때 필요한 건 '폭풍칭찬'이다. 실수할 때는 무관심하지만 잘할 때는 진심으로 칭찬한다. 개도 연기인지 진심인지 알아챈다. 예비 안내견을 교육하며 느끼는 건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거다. 개의 능력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게 아니어서 조바심을 내는 대신 묵묵히 꾸준히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 또 할 수 있다는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안내견 지도사가 되려면
국내에서 안내견을 배출하는 곳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와 한국장애인도우미견협회 2곳으로 취업의 문은 좁은 편이다. 안내견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교육도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학과, 동물자원학과 등 관련 전공자가 유리하다. 하지만 전공이 필수조건은 아니다.
처음부터 안내견 교육 업무를 맡게 되는 건 아니다. 견사관리, 번식∙교배 업무를 하며 개의 습성을 충분히 파악한 다음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지도사들은 시각장애인을 이해하고 안내견과의 보행을 보다 잘 돕기 위해 국가공인 시각장애인 보행 지도사 자격도 취득한다.
세계안내견협회(IGDF)는 안내견 6마리를 교육하고, 시각장애인 6명을 지도한 사람에게 훈련사 자격을 준다. IGDF의 훈련사 자격을 얻으면 협회 내 다른 국가의 안내견 지도사로도 활동할 수 있다.
도움말: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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