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추진 생크추어리 건립 계획
부지문제로 지연돼 방사장 모색
전국에 319마리, 시간 많지 않아
"곰답게 살 수 있도록 최선 다할것"
"동글동글한 외모에 털은 반짝반짝 빛났어요. 건강검진을 위해 가르친 입 벌리기나 채혈에도 가장 적극적이었고, 새로운 장난감도 너무 좋아했습니다. 갑자기 쓰러진 뒤 바로 세상을 떠나 다들 놀랐어요. 이제 조금 더 나은 경험을 하게 해줄 수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달 8일 오전 강원 화천군 농장에서 사망한 사육곰 '미자르'의 훈련을 담당했던 이순영 트레이너는 미자르의 죽음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자르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지난해 이곳 사육곰 농장에서 구조한 15마리 중 한 마리다. '편안이', '보금이'에 이어 미자르까지 세상을 떠나면서 농장에는 이제 12마리의 곰이 남았다.
미자르, 경련 일으킨 후 40시간 만에 떠나
미자르라는 이름은 시민들로부터 공모받아 큰곰자리 별 중 하나의 이름을 따 지었다. 왼쪽 귓바퀴가 없었는데 보통 어릴 때 옆 칸 곰이 물어 당겨 잘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였는지 다른 곰들과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사람과의 소통은 적극적이었고 활동가들은 그에게 더 마음을 쏟았다.
미자르는 지난 6일 오전 먹이를 먹은 후 갑자기 쓰러졌다. 곰 보금자리에서 활동하는 수의사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여건상 치료에 한계가 있었다. 수의사인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프로젝트에 참여한 수의사와 베트남 곰 생크추어리에 자문을 구했지만 대증처치 외에는 따로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박정윤 수의사도 "검사를 더 하고 싶었지만 장비도, 치료를 위해 곰을 보낼 곳도 없었다"며 "경련, 발작에 준한 처치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미자르는 결국 쓰러진 지 40여 시간 만인 8일 새벽 조용히 숨을 거뒀고, 농장 한 켠에 먼저 떠난 다른 곰들과 묻혔다. 문제는 사인을 명확히 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남은 12마리 곰 역시 15~20세로 적지 않은 나이여서 활동가들의 불안은 커졌다. 최 대표는 "이런 종류의 발작은 사육곰과 야생곰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다른 곰에게도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원인도 예방책도 없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종 치니 곰사로 조르르”… 곰들은 방사 훈련 중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카라는 당초 올해 6월부터 곰들을 위한 생크추어리를 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부지 매매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계획은 미뤄진 상태다. 이들은 대신 농장 내에 곰들이 흙을 밟고 수영하며 놀 수 있는 방사장을 세웠다. 방사장 이름은 '곰숲'. 고현선 카라 활동가는 "곰들이 나이가 많은 편인 데다 아픈 개체도 있다. 23㎡(7평) 규모에서 평생을 살다 보니 운동량이 너무 적었다"며 "급한 대로 곰들이 나가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곰숲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330㎡(100평) 규모의 곰숲은 숲에 웅덩이를 파 수영장을 만들고, 전기울타리를 둘러 곰이 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최태규 대표는 "곰이 통제를 벗어나게 되면 곰과 사람 모두 위험해지므로 부득이하게 전기울타리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생크추어리 건립도 준비해야 하기에 전적으로 곰숲에 투자하지는 못하지만 곰들이 즐길 수 있는 그네, 미끄럼틀 등 다양한 물품을 준비 중이다.
곰숲을 짓고 활동가들이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리콜 훈련이다. 농장 내 윗줄 곰사에 있는 곰에는 종소리를, 아랫줄 곰에는 호루라기 소리를 들려주고 각자의 방에서 맛있는 먹이를 줌으로써 '소리=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순영 트레이너는 "복도, 방사장으로 이동 거리를 확대하며 소리를 들려주면서 곰사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며 "방 위치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기도 하지만 결국 다 찾아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방사장에 나온 곰들의 반응은 어떨까. 곰마다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아직은 즐긴다기보다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는 편이다. 최 대표는 "칠롱이는 처음부터 씩씩하게 숲길을 걷고 수영장에 들어갔다. 반면 가장 덩치가 큰 미남이는 너무 조심스러워 배를 깔고 납작 엎드려 안전한 곳인지를 확인했다"며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상을 떠난 미자르 역시 곰숲에 나와봤지만 활동가들에겐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 트레이너는 "미자르가 시멘트 바닥이 아닌 흙을 밟아보고 떠났지만 완전히 즐긴다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단계였다"며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한 것 같아 그 점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곰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미자르를 떠나보내고 활동가들의 마음은 더 바빠졌다. 남은 곰들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 남은 사육곰은 319마리로 그 수는 점점 줄고 있다. 박정윤 수의사는 "미자르를 떠나보낸 뒤 곰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 수 있겠다 싶었다"며 "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서둘러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이들의 단기적 목표는 방사장 내 곰들의 합사다. 최 대표는 "열두 마리 곰이 모두 다 함께 곰숲에서 놀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다만 곰숲 규모가 크지 않고 오랜 세월 함께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로 늙어왔기 때문에 합사 훈련이 쉽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합사 훈련은 내년 초에 시작할 예정이다. 가을에는 곰들의 식욕이 가장 왕성해 합사 시 싸울 가능성이 더 높아서다.
이들은 우선 이곳 12마리의 곰, 나아가 남겨진 다른 사육곰을 위해 생크추어리를 건립한다는 목표다. 고현선 활동가는 "올해 안에 생크추어리 부지를 선정해 내년부터 착공에 들어가고, 곰숲은 추후 합사가 어려운 개체들이 머무는 곳으로 사용할 예정"이라며 "곰들이 남은 생이라도 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돌보고 준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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