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심리 전문가' 한덕현 중앙대 교수
"떨릴 수밖에 없는 순간의 실수는 '초크'"
"초크 인정 안 하면 경기력에 영향 줘"
‘2022 카타르 월드컵’ 1차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결정적 기회를 맞았지만 볼을 골대 위 허공으로 날린 황의조, 2차전 가나와의 경기에서 3실점한 골키퍼 김승규. 경기가 끝난 뒤 일부 축구팬들은 두 선수를 비판했다. ‘왜 그것도 못 넣었냐?’ ‘왜 못 막았냐’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을 놓친 선수들, 이것은 실수일까, 실력일까? 아니면 실수도 실력으로 봐야 할까?
2014년부터 축구 국가대표팀 의무위원(스포츠심리 분야)으로 활동 중인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누구나 떨릴 수밖에 없는 순간에 실수하는 건 당연하다”며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퍼포먼스(경기력)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표팀의 경기에 대해서는 “승패와 관계없이 선수들이 준비했던 대로 경기했다”며 “그것이 스포츠심리 전문가로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고 평가했다. 그 덕분에 “어느 팀을 만나도 기대한 만큼 경기력이 나왔다”며 “다른 말로 하면 자신감 있게 경기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강팀을 만나도, 위기의 순간에도 속된 말로 ‘쫄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렸다. “가나전에서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3 대 0으로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극복했다”고도 했다.
3차전(포르투갈) 경기 전인 지난달 30일 한 교수를 만나 ‘멘털 전문가’의 관점에서 관전평을 들어봤다. 어릴 적 운동선수를 꿈꾸다 ‘신체적 한계’로 꿈을 접은 그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스포츠정신의학 분야를 개척한 ‘국내 1호 스포츠심리 주치의’다. 야구, 축구, 농구, 골프 등 여러 운동 분야에서 프로 선수들을 돕고, 최근에는 불안한 현대인의 고민을 다룬 책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를 펴내기도 했다.
-지난 경기를 평가하자면?
“골 결정력은 아쉽지만, 과정은 만족할 만하다. 경기력이 안 좋거나 답답하고 연습한 것을 못 보여주지 않았다. 팬들의 평가가 좋은 이유는 선수들이 사력을 다해 뛴 것도 있지만, 어느 팀을 만나도 평소 감독과 연습했던 대로 해 팬들이 기대한 만큼 경기력이 나와서다.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자신감 있게 경기했다는 얘기다.”
-결과에 실망한 팬들도 있다.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면 평소의 한국 축구를 비판해야 한다. 우리 실력은 세계 1, 2위 수준이 아니다. 평소 잘하다가 작전 미스 때문에 못한 것도 아니고, 100위권이었다가 기적이 나온 것도 아니다. 준비한 대로 잘했다.”
"누구나 떨릴 수밖에 없는 순간의 실수는 당연"
-우루과이전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황의조, 가나전에서 3실점한 골키퍼 김승규 등 중요한 순간 실수한 선수들에 대한 비판도 꽤 많았다. 실수도 실력인가?
“실력, 초크(choke), 슬럼프를 구분해야 한다. 예컨대, 단체경기에서 나를 50% 타이트하게 마크했을 때는 비교적 자유로우니까 잘하다가 상대가 70%, 100%로 조이고 들어왔을 때 못하면 그건 실력이다. 그걸 ‘심리적으로 위축돼 그렇다’고 하면, 이 선수는 모든 걸 ‘멘털’ 핑계 대고 실력을 향상할 생각을 안 한다.
초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결승전처럼 누구나 떨릴 수밖에 없는 순간에 실수하는 걸 일컫는다. 중요한 순간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어쩔 수 없다. 그때는 실수해도 된다. 반대로 결승전도 아닌 평소 시합, 즉 떨리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실수하고, 장기간 지속되면 슬럼프다.
그렇다면 가나전에서 3실점한 골키퍼 김승규가 떨리지 말아야 하는 순간에 실수했나? 그건 아니다. 급박한 순간에 내가 팔을 조금 더 쭉 뻗지 못해서 골이 들어갔다. 그렇게 따지면 가나 골키퍼는 조규성 선수의 두 번째 골이 자신의 몸에 맞았는데도 왜 못 막았나?
황의조는 잘 보면 앞으로 나오는 골키퍼를 넘기려다 그 한 번의 기회를 못 살렸는데, 다른 나라에선 결정적인 기회 서너 번 왔어도 골을 못 넣은 선수 많고, 반대로 몸에 맞거나 빗맞아 골을 넣는 운 좋은 경우도 있다.”
-초크는 극복할 수 있나?
“아니다. 그게 경기다. 경기는 일종의 게임이다. 실력뿐만 아니라 운, 우연도 작용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우연적 요소, 운을 배제한 채 현실에 들이대기 시작하면 곤란하다. 다만, 선수들 대부분 초크를 슬럼프라 생각하고 찾아온다. 이들에게 ‘떨려야 할 순간에 떨림을 인정해본 적 있냐’고 물으면 ‘없었다’, ‘떨리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러면 불안감이 커져 실력발휘(퍼포먼스)에 영향을 준다. 또 슬럼프로 이어진다.”
선수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일부 국가는 스포츠심리 전문가를 월드컵에 대동하기도 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와 같은 조였던 멕시코가 대표적인 예다. 2015년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했던 후안 카를로스 오소리오 감독은 뉴질랜드 럭비 대표팀 ‘올 블랙스’가 오랜 기간 세계 정상을 지키는 이유가 ‘심리 치료’에 있다는 걸 깨닫고는 심리 코치를 기용했다. 당시 멕시코는 1차전에서 독일을 꺾는 등 선전하며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단체 종목, 부담 나눠 불안 극복"
-개인과 단체 종목 선수들의 압박감 차이가 큰가?
“단체 종목은 선수들끼리 부담을 서로 나누기도 하고, 리더를 잘 만나면 개인이 가진 불안감을 극복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반면 개인 종목은 의지하거나 의지받는 ‘상호작용(인터랙션)’이 없어 선수들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골프나 피겨스케이팅 같은 개인 종목에서 연습 때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하다 정작 대회에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 ‘저런 운동 능력으로 단체 종목을 했다면 진짜 잘했겠다’고 생각한 선수들도 있다.”
-선수들이 경기를 즐겼나? 아니면 부담스러워 하나?
“즐기는 건 희로애락이 다 포함된다. 국가대표로 뽑혀 한국 축구의 운명을 짊어지는 게 부담스럽지만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겠나. 부담감을 느끼는 것 자체도 즐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월드컵이란 최고 무대에서 전혀 떨지 않고, 관중의 호응을 유도한 이강인은 참 대단한 선수다. 사실 선수들은 약간의 떨림이나 불안감이 필요하다. 심한 불안감은 집중력을 떨어뜨리지만, 적당한 긴장감은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줘서다.”
-일부 팬들이 선수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찾아가 남긴 악플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나?
“엘리트 선수들은 그런 일을 많이 겪어 경기력에 지장을 받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신인 선수나 처음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팬덤’에 영향을 받기는 한다. 공항에 마중 나와 환영해주는 팬들만 봐도 ‘내가 이렇게까지 관심 받고 있나’ 하는 생각에 놀라거나 부담스러워하는데, 부정적인 글이나 신호를 보내면 훨씬 더 힘들어 한다. 그래서 선수들한테는 댓글 보기나 SNS 자제를 권하기도 한다."
축구에 밝은 한 교수는 이번 월드컵을 보고 “5년 전만 해도 ‘빌드업’ 축구가 유행했는데, 이제는 ‘순발력’ 축구로 진화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와 경기했던 가나나 우루과이 선수들은 야수가 어슬렁거리다 먹잇감을 보면 갑자기 확 달려들어 낚아채 가듯, 반박자 빠른 슈팅과 패스가 눈에 띄었다”며 “그런 순발력과 공격적 감각은 부럽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즐겼다... 벤투 재계약?"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일각에서는 공이 전방에 있으면 2선 공격수부터 시작해도 될 것을 굳이 골키퍼에게 백패스하고, 양옆 수비수부터 편하게 시작하는 빌드업이 에너지 낭비고 강박적이라고 비난하는데 그것이 벤투호 스타일이고, 그가 추구하는 축구다. 우리는 그에게 맡겼기 때문에 다 끝난 뒤에 공과를 얘기해야지,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월드컵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되는 벤투 감독의 재계약 여부도 관심사다.
“그건 경기 결과보다는 대한축구협회가 10년, 20년, 50년을 내다보는 한국 축구의 대계를 어떻게 세웠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협회가 한국 축구의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벤투 감독에게 4년 동안 ‘이만큼 발전시켜달라’고 기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적보다는 그 합당한 목표를 달성했으면 재계약하고, 그렇지 못했다면 보완해줄 다른 지도자를 데려오면 된다.
그 전제는 협회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벤투 감독을 데려왔고, 어떻게 평가할지 이미 4년 전 혹은 그 이전에 계획이 세워졌어야 한다는 얘기다. 벤투 감독이 목적을 이뤘는지 반드시 평가하고, 그 평가 도구가 과학적으로 측정됐는지도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 벤투 감독이 실패든 성공이든, 한국 축구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을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그런 것도 없이 월드컵 경기 결과만 갖고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면 30년 전 축구협회와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선수들은 다음 월드컵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누구나 세계 최정상의 무대에서 내 실력을 한번 겨뤄보고 싶어한다. 축구선수에게 그런 꿈의 무대는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이다. K리그든, 유럽리그든, 중동리그든 관계없이 나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선수가 돼야 한다. 자신의 개성과 특징, 즉 정체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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