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1명, 발달장애를 답하다]
발달장애 가족 릴레이 인터뷰<20·끝>
설문지에 긴 글을 남긴 서울의 A씨
편집자주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1,071명의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광역지자체별 발달장애 인프라의 실태를 분석해 인터랙티브와 12건의 기사로 찾아갔습니다.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설문 응답자들의 개별 인터뷰를 매주 토, 일 게재합니다. 그 마지막 회입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이 전한 발달장애 가족 인터뷰 중에서, 이 마지막 분은 설문지에 연락처를 남기지 않아서 만나지도 전화 통화를 하지도 못했다. 오직 서울에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부모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지난 여름 설문조사 당시, 설문지의 맨 마지막에 담담하고 가슴 아픈 긴 글로 현실을 써놓았다. 그는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라 내년 2월에 졸업하면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추운 겨울, 이제 졸업을 앞둔 그 가정은 어떤 절망에 빠져 있을까.
그가 써놓은 글의 마지막 부분에는 사회 속에 섞여 경험하고,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싶은 바람, 하지만 현실은 늘 집에만 갇혀 있어야 하는 인생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보람찬 매일을 보내고 싶습니다. 아이도 집이 아닌 치료실이 아닌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집에만 있어야 하는 하루가 시작이 되었네요. 힘든 삶인 것 같습니다. 외로운 길인 것 같습니다. 아이도 얼마나 힘들까요? 반복되는 일상이요. 내년에는 갈 곳이 없어서 이 생활이 365일이겠네요."
이 글을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사회에 보내는 '편지'라고 부르고 싶다. 그 전문을 전한다.
발달장애인 부모가 보낸 편지
발달장애인이 마음 놓고 다닐 만한 곳도 현저히 부족할뿐더러 문화ㆍ여가생활ㆍ여행다니는 것조차도 많이 힘든 상황입니다.
코로나로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어야 하는 발달장애인이 대다수라고 생각합니다. 기능이 어느 정도 되는 장애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다수가 방학 또는 학령기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어 오로지 부모가 집에서 양육을 해야 하는 이 현실이 참 암담합니다.
어디에 보내고 싶어도 시설 부족으로 갈 수도 없고 대기라는 것을 걸어도 기존 이용자들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고 여가를 보내기 위해 같이 갈 만한 장소도 없고··· 이런 일상이 매일 반복되는 실정입니다.
장애 아동의 치료비 또한 오롯이 부모의 몫인지라 부담 또한 큽니다. 치료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없고 장애인의 특성상 평생 받아야 하는 것이 치료인데 금액 또한 많이 비싼 편이라 감당이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비용 부담이 많을 땐, 치료가 필요함에도 포기하기도 합니다.
또한 학교에서도 일손부족으로 중증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다고 개인 도우미 선생님을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비용은 오롯이 부모의 몫입니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는 부모들은 학교 보내는 것도 포기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돈 없고 힘없는 부모를 가진 발달장애 아이들은 방치되기 쉬운 구조이지요.
부모 노릇을 하고 싶어도 사회적으로 뒷받침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저희 아이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라 내년 2월에 졸업을 하면 당장 갈 곳이 없습니다.
각종 시설을 알아보고는 있지만 정원이 다 차서 대기만 가능하다고 하네요. 순서도 언제가 될지 장담을 못 한다고 하고요.
학교 이어 전공과(특수학교에 개설된 일종의 대학과정)도 시험을 봐서 들어갈 수가 있는데 이 또한 중증인 아이들은 불리한 조건이지요.
그래서 중증인 아이들은 대부분 사설시설로 가게 되는데 턱없이 부족한 시설에 갈 곳이 없답니다. 순번이 언제 될지 모르지만 가정에서 기약 없는 날을 보내야 하는 거지요.
이로 인해 부모는 아이의 양육으로 하루 24시간을 보내야 하는 실정이고요. 활동보조인(장애인 활동지원)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이 또한 지속적으로 이용하기도 어렵습니다.
낮은 급여에 힘든 중증 아이들을 굳이 맡으려고 안 하거든요. 그래서 하시겠다는 분 구하기도 어렵고 구하더라도 하루 이틀 하시고 그만두시는 분이 대다수입니다.
아이들 특성상 사람이 자주 바뀌면 불안도가 높아져 일상생활에도 많은 문제점이 생기는데 지속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분이 없어 부모가 오로시 24시간을 보살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장소가 많다고 하면 양육에 도움이 될 텐데, 같이 갈 만한 시설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습니다.
혼자서는 아이와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곳이 없지요. 그래서 집 안에서만 지내거나 기껏 동네 주변 산책이 다입니다.
이런 생활을 부모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부모가 죽고 나면 돌봐줄 사람이 없는 실정이라 죽는 것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발달장애인을 둔 가정에서는 아이보다 하루라도 늦게 죽었으면 좋겠다고들 말합니다. 그래야만 맘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저 또한 그렇고요.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많이 부족하지만 동반된 시설과 사회구조도 많이 부족합니다. 모든 것이 다 부모 몫인 게 이 나라 장애인 복지 실정인 것 같습니다.
여름방학 시작한 지 2주째인데 아이는 치료실 외에는 갈 곳이 없어서 집에만 있네요. 치료실 가는 하루 2시간 제외하고는 오로지 집에만요.
날씨가 더워 주변 산책 나가는 것도 힘든 여름이네요. 우리 아이들이 편히 갈 수 있는 시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눈뜨면서 오늘은 어디로 같이 체험학습 가볼까라는 기대에 찬 하루의 시작을 해보고 싶습니다.
보람찬 하루를 매일 보내고 싶습니다. 아이도 집이 아닌 치료실이 아닌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집에만 있어야 하는 하루가 시작되었네요. 힘든 삶인 것 같습니다. 외로운 길인 것 같습니다. 아이도 얼마나 힘들까요? 반복되는 일상이요. 내년에는 갈 곳이 없어서 이 생활이 365일이겠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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