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극한 대치 속 군사분계선 최근접 초소 현장 취재
오바마·트럼프 다녀가...한미 장병 "적만 보며 항상 긴장"
평택 캠프 험프리스는 해외 주둔 미군기지 최대 규모
"오늘 밤 당장 싸울 준비...향후 70년 더 강해질 것" 자신
편집자주
2023년 한미동맹이 70년을 맞았다. 전후방 주한미군기지 현장 르포, 전술핵 재배치 찬반 대담, 전문가 인터뷰, 70년의 역사적 장면 등 다각적 조망을 통해 동맹의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본다.
지난달 27일 경기 파주시 공동경비구역(JSA). 북한군과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전날 북한 무인기가 서울과 수도권 상공을 헤집고 다닌 터라 추가 도발 우려까지 더해 최전선의 긴장감은 한층 고조됐다.
이날 새 떼를 무인기로 오인해 전투기가 출격하는 소동을 벌일 정도로 전방지역은 전례 없이 예민한 분위기로 바뀌어 갔다. 주민들의 불안감도 가중됐다. 하지만 JSA 경비대대 소속 한미 장병들은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실전과 다름없는 완벽한 작전태세를 유지하려 여느 때처럼 묵묵히, 하지만 분주하게 움직였다.
최전방에서 지키는 70년의 약속, ‘같이 갑시다’
군사분계선(MDL)과 가장 근접한 감시초소(GP)로 알려진 오울렛 초소(OP)를 찾았다. MDL에서의 거리는 불과 25m. 북한 216ㆍ217ㆍ218GP에 맞선 한미 양국군의 최전방 방어선이다. 70년 전인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판문점과도 가깝다. 군부대 측은 "2022년 한 해 동안 이 초소를 방문한 언론 매체는 한국일보가 유일하다"고 귀띔했다.
초소에 오르자 녹슨 푯말이 눈에 띄었다. 정전협정 당시 남북 경계선으로 설치한 MDL 표식이다. 70년 묵은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군 관계자는 “이곳에선 서울보다 개성이 더 가깝다”고 말했다. 북한 기정동 선전마을은 물론 날씨가 좋으면 개성공단까지 관측할 수 있다고 한다.
오울렛 초소는 남북 분단과 냉전의 상징으로 통한다. 6·25전쟁 때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다 전사한 미 2사단 소속 조지프 오울렛 일병의 희생정신을 기려 초소 이름을 지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면 단골로 찾은 명소이기도 하다. 안보위기 상황에서 한국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강조하며 북한을 향해 단호한 메시지를 전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2012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각 북핵 위기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의혹, 광명성 3호 발사 등으로 한반도 위기지수가 높아진 시점에 이곳을 찾았다. 2019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초소를 방문했고, 2022년 9월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도 초소에 들렀다.
초소에 상주하는 인원은 우리 군 장병 60여 명이다. 주요 훈련이나 작전상황에서는 미군이 함께한다. 초소 위 철탑 위에도 병력이 상시 투입된다. 북한군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과도 같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하에는 벙커도 설치했다. 적의 기습공격에 맞서 전투력을 보존하면서 신속히 맞대응에 나서기 위한 공간이다.
부대 관계자는 “적에게만 집중하는 자세로 늘 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날 무인기 침투 당시 초소의 상황이 궁금했다. 장병들은 “어제도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며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미 장병들은 수색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장병은 작전에 앞서 실탄이 가득 장전된 탄알집을 여러 개 지급받았다. 한 장병은 “여기서는 빈 탄알집이라는 게 없다”고 강조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북한의 도발에 맞서 한치의 틈새도 허용할 수 없다는 각오로 들렸다.
분단된 타국에서 작전에 나선 미군 장병의 생각이 궁금했다. 알프레드 디킨스 JSA 경비대대 작전부사관(미 육군 중사)은 “뛰어난 인원들만 선발되어 올 수 있는 JSA에서 한미 장병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크나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JSA에서 8개월째 근무 중이다. 한국 근무는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전에는 경기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복무했다. 함께 작전을 수행한 유재우 JSA경비대대 중위는 “JSA는 지원해야 올 수 있는 곳”이라며 “미군의 앞선 전투기술과 장비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라고 밝혔다.
한국 속 작은 미국… 한미, 손을 맞잡다
JSA 취재에 앞서 지난달 16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자리잡은 한미연합사단을 찾았다. 캠프 험프리스는 단일 기지로는 해외 주둔 미군기지 가운데 가장 넓다. 여의도 면적(2.9㎢)의 5배가 넘는 14.77㎢ 규모다. 부대 안에는 초대형 전략수송기 C-17이 이착륙할 수 있는 길이 2,178m 활주로가 설치돼 있다. 미국의 소도시 하나를 한국에 옮겨 놓은 셈이다.
기지를 찾은 날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활기가 넘쳤다. 연합사단 본부 1층 로비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매달린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한미 장병이 모여 인근 주민들에게 장난감과 학용품을 기증하는 행사가 열렸다.
다른 건물에서는 시뮬레이션 사격훈련이 한창이었다. 실외 실탄 사격 대신 초대형 스크린에 표시되는 표적을 첨단 시뮬레이션 총기로 맞추는 방식이다. 현장에서 마주한 미군 장병들은 매서운 눈매로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M4 카빈 소총을 화면 이리저리 조준하면서 실전과 다름없는 긴장감 속에 진지한 모습이었다.
연합사단의 핵심은 한미 양국군의 시너지 효과다. 이를 위해서는 원활한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군수처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미군 장교와 한국군 장교가 무언가를 열심히 상의하고 있었다. 이들은 연합사단 미측 군수참모인 다닐로 그린 중령과 한측 부참모 박기진 중령. 계급장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계급으로 같은 업무를 하는 파트너다.
부친도 주한미군에서 복무했다는 그린 중령은 “박 중령과 나는 각각 한미를 대표하고 있다”며 “서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존중하면서 ‘동맹’이라는 가치를 위해 함께 일한다”고 말했다. 박 중령은 “한미 연합은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구조”라면서 “미군은 전투력에 경험이 많고 우리 군은 한국 지형에 특화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동맹의 힘과 가치는 북한에 맞선 군사력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와 생각을 공유하는 것도 동맹의 중요한 동력이다. 라이언 도널드 연합사단 공보참모(중령)는 최전방인 문산과 동두천에 이어 현재 평택까지 주한미군에 세 번째 파병돼 총 3년여를 복무하고 있다고 그간의 경력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파병된 미군 장병은 한국 문화에 녹아들고 있다”며 “미국에서부터 보고 들었던 한국 영상물은 물론 한국 음식에도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부대 안 식당에서 장병들이 맛나게 먹고 있는 점심 메뉴는 갈비와 잡채를 비롯한 한국 음식이었다. 부대 관계자는 “매주 금요일마다 한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캠프 험프리스의 한 병원에서는 '한국계 미국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2007년 6월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 임무를 수행하다 반군의 습격에 맞서 전우들을 지키기 위해 수류탄을 품에 안고 산화한 김신우 병장이다. 그의 정신은 ‘김신우 병장 군 응급의료센터ㆍ치과 병원(SGT Shin Woo Kim Soldier Centered Medical Home and Dental ClinicㆍSCMH)’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해방 후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이역만리서 전사한 미국인 병사와 미국인 전우를 구하기 위해 이라크에서 숨진 한국계 김 병장이 각각 JSA 최전방 초소와 미군 핵심기지의 주요 시설에 오롯이 새겨져 한미동맹에 혼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아이작 테일러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장(대령)은 “우리는 한국을 지키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강력한 연합훈련을 통해 오늘 밤 당장 싸울 수 있는(Fight Tonight) 전투태세를 갖췄다”고 강조했다. 그는 “1953년 정전협정과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국과 미국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해왔다”며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을 통해 지역의 번영이 가능하도록 한반도 및 인도·태평양의 안보와 안정을 보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어떤 난관이 생기든... 동맹은 계속된다"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다섯 글자 '같이 갑시다'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백선엽 장군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나눴던 짧은 인사말에서 기인한다. 한국군과 미군이 힘을 합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켜가자'는 의미다. 역대 한미연합사령관, 주한미군사령부 관계자들을 비롯한 한미 양국군 지휘부가 입버릇처럼 동맹의 강인함과 끈끈함을 강조하는 구호로 사용하고 있다.
양국 장병들은 한미동맹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그린 중령은 “한미 양국군이 지난 70년을 함께했다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관계임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동맹은 앞으로도 쭉 지속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지정학적인 난관은 언제나 생길 수 있지만 우리는 지난 70년과 같이 70년 후에도 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중령은 “앞으로의 70년은 지난 70년에 비해 더 대등한 관계에서 훨씬 강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JSA에서 만난 장병들도 한국과 미국의 강력한 협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유 중위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한미동맹은 굳건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며 “적이 감히 도발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한미동맹의 가장 큰 이유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킨스 중사는 “(한국에 파병된 미군 장병은) 한국은 물론 미국을 수호한다는 것에 대해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동맹이 지난번 한국 복무 때보다 확실히 더 강해진 것을 체감한다”면서 “한미 양국 장병이 모든 작전을 함께하는 연합대대인 JSA 경비대대 자체가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국방수권법에 서명하면서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그는 “약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유지하고, 평화롭고 안정적인 한반도라는 공동 목표를 지지하기 위해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모든 범주의 방어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함으로써 한국과의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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