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
강수연, 김현주와 함께 그린 가족애
고(故) 배우 강수연은 마지막까지 월드 스타였다. '정이'는 공개 후 여러 나라의 영화 마니아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가장 한국적인 SF 영화'가 얻은 의미 있는 결실이다.
지난 20일 베일을 벗은 넷플릭스 영화 '정이'는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셸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전설적인 용병 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기 위해 애쓴다. 작품은 뇌 복제 실험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내세운 SF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아왔다. 강수연의 유작이라는 부분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고인은 지난해 5월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의식이 없는 상태로 치료를 받았으나 세상을 떠났다.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던 강수연은 유작으로까지 세계인들의 시선을 모았다. '정이'는 공개 3일 만에 1,93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 영화(비영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한국은 물론 미국 독일 스페인 대만 싱가포르 등 총 80개 국가·지역의 톱 10 리스트에 올랐다.
'정이'의 중심에는 강수연이 있다. 그가 연기한 서현은 수많은 작전에 참전해온 정이의 딸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영웅 정이의 뇌는 A.I. 전투 용병 개발을 위해 복제됐다. 서현은 크로노이드 연구소에서 일하며 전투 용병 정이의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면서 어머니 정이와 같은 기억, 외모를 갖고 있는 로봇들이 함부로 다뤄지고 고통을 겪고 폐기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강수연은 섬세한 표현력으로 서현의 아픔과 단단한 내면을 동시에 그려냈다. 그가 쌓아온 내공은 '정이'를 통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가장 한국적인 SF, 그 중심에 있는 강수연
'정이'의 메가폰을 잡은 연상호 감독은 그간 많은 작품에서 가족애를 그려왔다. 대표작인 K-좀비물 '부산행'에서는 석우(공유)가 딸 수안(수안)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부산행' 그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반도'의 민정(이정현) 또한 진한 모성애를 보여줬다.
그가 그려낸 가족애는 또 다른 OTT 작품인 '괴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훈(구교환) 수진(신현빈) 부부와 석희(김지영) 도경(남다름) 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인물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기꺼이 위험한 곳으로 향하고 서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애는 많은 K-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소재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다. 잘 풀어낸 가족 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극에 감동을 더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정이'에서는 강수연과 김현주가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할을 했다. 딸이 걱정할까 우려해 전투를 앞두고도 밝게 웃는 정이, 어머니를 닮은 로봇을 그저 기계로만 바라보지 않는 서현의 모습이 안방극장에 먹먹함을 안겼다. "가장 한국적인 SF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 연상호 감독의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던 강수연은 자신이 느꼈던 감동을 가족애 이야기로 고스란히 전달했다. 로봇 정이가 어떤 삶을 살게 됐을지 자세히 나오지 않기에 결말이 아쉽다는 평도 있지만 '정이'는 충분히 의미 있는 한국적인 작품이다.
강수연 동생은 '2022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세상을 떠난 언니를 대신해 은관문화훈장 수훈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긴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걸 많은 분들이 인정해 주셨다는 걸 언니가 기억하고 위안 삼으며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있으면 좋겠다. 배우 강수연을 기억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강수연을 추억하는 이들은 '정이'를 통해 더욱 많아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스페인 등의 팬들까지 아픔을 함께 나누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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