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고 딸 판 엄마 대본 받고 6시간 걸어" '더 글로리' 신스틸러 박지아
"최고 악당은 연진 아닌 동은·연진 엄마" 재평가
교실까지 침투한 기성세대 권력과 '어른' 실종 고발
"네X을 상대할 새로운 고데기를 찾을 거니까."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2에서 연진(임지연)은 학교폭력에 대한 반성과 자수를 마지막으로 권하는 동은(송혜교)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며 되레 이렇게 협박한다. 연진이 찾은 고데기는 청부살인업자가 아닌 바로 알코올 중독자인 동은 엄마 미희(박지아·51). 고데기로 동은을 괴롭힌 연진의 엄마에게 돈을 받고 학폭을 무마해준 미희는 이번엔 가해자의 오른팔이 돼 딸의 숨통까지 죈다. 드라마에서 미희는 동은의 첫 가해자였고 딸의 삶에 있어선 안 될 곰팡이 같은 존재였다. 이런 엄마 역을 제안받은 박지아는 풀기 어려운 커다란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고 돌아봤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그는 "대본을 보고 '왜 이 엄마는 2,000만 원을 받고 딸을 (학폭가해자 부모에게) 팔았을까' 등의 생각을 하며 한강 주변을 6시간 동안 걸었다"고 말했다. "대본을 받고 상상할 수 없는 엄마라 놀랐지만 요즘 아이를 학대하는, 말도 안 되는 부모들의 모습이 뉴스로 계속 들려오잖아요. 미희 같은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쫑파티 때 김은숙 작가 만나 눈물... '동은 엄마'
박지아는 '더 글로리'의 신스틸러다. 극에서 그가 송혜교의 집에 불을 지르고 "우리 모녀 아주 오늘 한번 타 죽어보자"라며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은 파트2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드라마 관계자에 따르면 송혜교는 이 장면을 찍다 탈진할 뻔했다. 박지아는 술로 폐인이 된 미희를 연기하기 위해 체중 7kg을 뺐다. 송혜교와 몇 번의 리허설 뒤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딸 방에서 번지는 불길을 바라보며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대본에 없는 설정이었다. 박지아는 "동은이 연진을 찾아가 '멋지다 박연진'이라며 손뼉쳤던 것처럼 동은과 엄마가 부딪혀 폭발하는 순간이 엄마에겐 축제의 시간이 될 거라 생각해 감독에게 그런 모습을 제안했다"고 촬영 뒷얘기를 들려줬다. 그를 동은 엄마 역으로 추천한 이는 김은숙 작가였다. 박지아는 영화 '기담'(2007)과 '곤지암'(2018)에선 모두 기괴한 귀신으로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진짜 알코올 중독자 같더라고요. 신나서 하시던데요?" 드라마 쫑파티 때 김 작가가 건넨 이 말에 박지아는 눈물을 쏟았다.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치며 "연기 접어야겠다"고 속앓이를 하면서도 꺾이지 않고 지켜온 연기에 대한 신념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동은이를 어떻게든 무릎 꿇고 눈물 흘리게 만들어야 해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드라마를 보는데 동은이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태어나는 건 자식에겐 선택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내 존재의 시작점에 있는 부모에게 고데기로 데이니 얼마나 고통이었겠어요." 목이 멘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정순신 사태'와 울림 준 '부동산 사장(손숙)'
이런 맥락에서 파트2가 공개된 후 '더 글로리'는 학폭을 대하는 부모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고발하는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최고 악당은 연진이 아니라 동은 엄마와 연진 엄마"라는 게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온 시청자들의 주된 반응이다. '더 글로리' 파트2에서 동은의 엄마는 학폭으로 무너진 딸의 삶을 또 한 번 짓밟고 연진의 엄마는 딸에게 반성의 길을 열어주기는커녕 자식을 버린다. "부모들이 자식을 망친 가해자로 부각되는 건 청년들이 믿고 따를 '어른'이 사라졌다는 이 시대의 자화상"(공희정 드라마평론가)이다.
'부모가 학폭의 고데기'란 설정은 "요즘 학폭은 부모, 즉 기성세대의 권력이 교실까지 침투해 벌어진 폭력이고 '더 글로리'는 이에 대한 폭로"(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로 해석되기도 한다. 아들은 부모의 권력을 과시하며 친구에게 폭언하고 부모는 그들이 가진 사회적 배경을 총동원해 아들에게 전학 처분을 내린 학교에 맞서 대법원까지 가는 끝장 소송을 벌인 '정순신 사태'가 들춘 그늘은 현실판 '더 글로리'로 여겨졌다. "이런 현실에서 '더 글로리'는 그릇된 부모, 즉 핏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동은이 무너진 삶을 추스르는 데 도움을 준 부동산 주인(손숙)을 통해 사회적 대안을 보여주고 그 방법 마련을 촉구한다."(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김 작가는 넷플릭스를 통해 "학폭 피해자를 보면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하는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더라"며 "세상에 태어났을 때 누군가가 부딪히는 첫 번째 세상이 엄마인데 그 첫 어른이 가해자가 된 현실을 동은 엄마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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