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다]<22>경기 화성 국화도
경기 화성에 있지만 충남 당진서 더 가까워
몽돌과 조개껍데기, 형형색색 야생화 가득
바지락·고둥 캐고 낙지 잡는 갯벌체험 인기
수도권서 멀지 않은 청정 섬 "힐링에 제격"
편집자주
3,348개의 섬을 가진 세계 4위 도서국가 한국. 그러나 대부분 섬은 인구 감소 때문에 지역사회 소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생존의 기로에서 변모해 가는 우리의 섬과 그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뜨는 해를 보기 위해 동해로, 지는 해를 보기 위해 서해로 동분서주할 필요 없는 곳이 있다. 수도권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경기 화성 국화도다. 국화도에선 나지막한 능선을 넘거나, 능선 위쪽에 위치한 해맞이 및 해넘이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과 바닷속으로 잠기는 해넘이를 모두 볼 수 있다.
해맞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성지는 충남 당진군 ‘왜목마을’이다. 하지만 국화도를 한 번이라도 찾은 사람이라면 '성지'의 개념이 달라진다는 게 주민들 얘기다. 국화가 많이 피는 섬이라고 해서 국화도다. 원래 이름은 만화(晩花)도다. 꽃이 늦게 지고 늦게 피는 섬이라는 데서 유래했다. 지난 14일 국화도에 들어서자 육지에선 이미 진 벚꽃이 여전히 흩날리고 있었다. 형형색색 야생화들이 꽃을 피우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꽃 이름이 들어간 이유를 체감할 수 있었다.
작지만 외롭지 않은 섬
국화도의 행정구역은 경기 화성시 우정읍이다. 우정읍사무소에서 국화도까지 직선거리로 28km다. 화성시 궁평항에서 배로 가면 1시간 걸린다. 당진군 석문면에 있는 장고항을 이용할 경우 15분 만에 도착한다. 장고항 노란등대에서도 국화도가 보인다. 때문에 40여 가구 60여 명 주민들은 주소지만 화성일 뿐 생활권은 당진이다.
국화도는 0.39km 면적의 작은 섬이다. 하지만 외롭지 않다. 왼쪽에 도지섬, 오른쪽에 매박섬이 감싸고 있다. 밀물 때면 서로 다른 세 개의 섬처럼 보이지만 썰물이면 바닷길이 열려 세 섬이 하나로 연결된다. 국화도와 500m 떨어진 도지섬은 갯바위와 모래밭이 높아 바닷물이 조금만 빠져도 건널 수 있다. 반면 매박섬은 하루에 두 번 길이 열려 3, 4시간 정도만 연결된다. 조수간만의 차가 클 때는 2, 3일 동안 길이 열리지 않는다. 매박섬은 말이 왼쪽으로 넘어져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주민들은 토끼섬이라고 부른다.
국화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박광식씨는 “과거 섬이 너무 외로운 거 같아 주민들이 토끼 몇 마리를 풀어놨는데 자기들끼리 번식해서 토끼가 굉장히 많았다”며 “언제부터인가 죽었는지 잡아먹혔는지 토끼가 사라져 지금은 다시 무인도가 됐다”고 말했다. 사자바위도 매박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매박섬의 하얀 백사장을 지나 섬 뒤쪽으로 돌아가면 사자가 움츠리고 앉아 있는 바위다. 누가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닌 오랜 시간 조개껍데기가 파도와 바람 등에 의해 쌓여 조성된 자연이 만든 선물이다.
몽돌 · 조개껍데기 가득한 해변
화성시는 국화도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도록 섬 외곽을 따라 둘레길을 조성했다. 선착장에서 시작된 해안가 덱(deck)을 따라 걸으면 섬을 한 바퀴 돈다. 조개껍데기와 모래가 적당히 어우러진 국화도 해수욕장은 활처럼 동그랗게 펼쳐져 있다. 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에는 몽돌해변이 조성돼 있다. 파도가 치면 몽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섬 전체에 울려 퍼진다. 10년 넘게 국화도를 방문하고 있는 고진완(61)씨는 “섬 자체가 조용하고 사방이 바다여서 쉼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며 “지난해 암 말기 판정을 받았는데 건강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뒤쪽 해안길에서는 수백 년간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암도 만날 수 있다. 해안길 곳곳에 벤치가 마련돼 있어 오롯이 바다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만끽할 수 있다.
선착장에서 시작해 둘레길을 30분 정도 걸으면 벚꽃터널과 다양한 야생화들이 관광객을 반긴다. 만화도라는 옛 지명처럼 육지보다 꽃 피는 시기가 늦다. 육지에서 4월 초 봄꽃이 피면 국화도에선 4월 말이나 5월 초 꽃이 만개한다. 바다의 찬 바람 탓이라는 게 주민들 설명이다. 경기 용인에서 온 한 관광객은 “올해는 날씨가 들쭉날쭉해 꽃구경을 제대로 못했는데 여기에서 꽃구경 제대로 하는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섬 주민은 "국화도라는 이름 때문인지 섬 관광객들 대부분은 야생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며 "그간 감소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선 꽃과 관련한 볼거리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연간 2~3만명 수준으로 줄어든 관광객
국화도는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선착장 주변에 커뮤니티시설이 들어서고 카페와 편의시설 등도 조성될 예정이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코로나19로 감소한 관광객들의 발길이 다시 늘어날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국화도는 행정안전부가 2017년과 2019년 선정한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섬 33곳에도 꼽혔을 정도로 공인된 관광지다. 하지만 연간 8만 명 이상이던 관광객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 2만~3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코로나19가 물러갔지만 한번 줄어든 관광객 수는 좀처럼 회복 기미가 없다.
40여 가구 중 10여 가구는 숙박업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또 어촌계 차원에서 바지락과 고둥을 캐고 낙지까지 잡을 수 있는 갯벌 체험도 주요 수입원이다. 인공어초시설까지 조성된 국화도는 지난 2월 수산자원관리수면으로 지정됐다. 지정 해역에서는 2028년까지 5년간 어업 활동이 제한된다. 특히 인위적인 매립·준설 행위와 인공구조물 신축 등의 행위, 광물을 채취하는 행위는 물론 스킨스쿠버 행위와 오염 유발 행위 등 수산자원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주민들의 생활 제약도 일부 불가피하지만 청정 섬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박광식씨는 "작은 섬이지만 일출과 일몰을 같이 볼 수 있고,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야생화들도 섬을 수놓고 있다"며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깨끗한 섬에서 힐링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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