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머스트 액셀러레이터 대표 & 마이크 김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아태지역 총괄
"소수 색깔 녹아든 다양성 지향...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진출 도울 것"
신생기업(스타트업) 생태계는 스타트업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투자사(VC), 스타트업 육성업체(액셀러레이터), 이들과 협력하고 거래할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 및 제도로 뒷받침해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부산광역시에 국내 최초로 문을 연 구글 스타트업 스쿨은 이상적인 스타트업 생태계 모델로 꼽힌다. 부산시와 세계적 기업 구글의 지원, 투자와 육성을 전담할 머스트 액셀러레이터가 뭉쳤기 때문이다.
4일부터 가동하는 이곳은 예비 창업가와 초기 스타트업을 선정해 연간 두 차례에 걸쳐 각 12주 동안 인공지능(AI), 사이버 보안, 디지털 마케팅 등 각종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투자와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 구글 직원들이 강사로 참여한다.
따라서 스타트업에 가장 필요한 것들을 한 번에 제공하다보니 스타트업 및 예비 창업가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쏠린 스타트업 지원의 지역 편중을 벗어난 것도 의미 있다. 운영을 맡은 머스트 액셀러레이터의 이지선(58) 대표와 지원을 전담할 마이크 김(39)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아태지역 총괄을 구글 스타트업 스쿨이 자리 잡은 부산 유라시아플랫폼에서 만나 운영 계획을 알아봤다.
"무조건 서울에서 한다는 생각 버려라"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구글 스타트업 스쿨을 부산에 개설한 이유다. 김 총괄은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답했다. "대학에 가든 취직을 하든 무조건 서울로 가려고 해요. 이 생각을 깨고 싶었어요."
그는 지방에서도 스타트업 성공 사례가 많이 나와야 미래가 밝다고 본다. "미국의 스타트업들이 모두 실리콘밸리에서만 창업하지 않아요. 뉴욕, 보스턴 등 각지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해 투자를 받고 키우죠. 서울이나 부산이나 모두 5세대(5G) 이동통신이 되고 업무 공간도 많은데 꼭 서울에서만 스타트업을 할 필요가 없죠. 스타트업 스쿨은 그런 생각을 바꾸는 곳이에요."
그래서 구글 스타트업 스쿨은 성과 목표(KPI)를 정해 놓지 않았다. "이것은 구글의 영업 활동이 아니에요. 그래서 스타트업에 얼마 투자하고 일자리를 몇 개 만드는 등 숫자 목표가 전혀 없어요."
그러나 현실적 이유도 있다. 구글 입장에서 안드로이드, 클라우드 등 자체 제품과 서비스를 모두 지원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스쿨이 잘 되면 잠재적 고객을 확보하는 셈이다. "자연스럽게 구글의 제품과 서비스를 쓰게 되니 익숙할 수 있죠."
여러 색깔 녹아든 다양성을 지향
머스트 액셀러레이터와 구글은 다양성(diversity)이라는 중요 목표에 의기투합했다. 김 총괄은 "구글의 지향점은 다양성"이라고 강조했다. "다양성은 구글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죠. 부산을 선택한 것도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 싶은 다양성 차원의 결정이죠."
운영을 맡은 이 대표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신문기자로 일하다 미국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해 매각하고 경기, 인천과 성남 판교에서 신한은행과 손잡고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센터 및 육성 센터를 3년 이상 운영했다. "스타트업 육성 일을 하며 성장하는 사람들 옆에 있어 좋았어요. 그래서 지난해 구글이 제안했을 때 부산에 연고가 없는데도 다양성이라는 목표에 매료돼 동참했죠."
이들이 말하는 다양성이란 소수의 색깔이 어우러져 구색을 갖추는 것이다. "각자의 고유 가치가 섞여 빛을 내야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죠. 그런데 우리는 안타깝게도 다양성이 퇴색하고 있어요. 과거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각 지역에서 다양한 학생들이 입학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모두 외고 일색이에요. 다양성이 무너진 것이죠. 이렇게 되면 타인을 이해하기 힘들어요.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예요. 서울에 집중된 스타트업 생태계는 다양성이 무너진 생태계죠."
이런 생각에 이 대표는 다양성 펀드도 기획한다. "여성, 기후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창업자들을 지원하고 싶어요.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여성 창업가가 지난해 받은 투자는 전체 투자 대비 10% 이하입니다. 말이 안 되죠."
그런 점에서 그는 여성 창업을 미개발 영역으로 본다. "여성 창업 건수는 많은데 카페, 식음료 등 1차 서비스에 집중됐어요. 공대에도 여성들이 많지만 기술 혁신 스타트업을 창업한 사례가 많지 않아요. 그만큼 미개발 영역이어서 지원하고 싶어요."
구글과 세계 시장 진출 기회 제공
이 대표는 교육 대상을 다양성에 초점 맞춰 예비 창업가나 스타트업 직원 등 연간 1,000명을 선정한다. 부산 지역에 연고를 둔 스타트업과 예비 창업가에게 우선권을 주지만 전국 모든 스타트업이 지원할 수 있다.
김 총괄이 스타트업 스쿨의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는 것은 세계 시장 진출 기회다. "구글은 전 세계에 방대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요. 이를 활용하면 국내 스타트업이 해외 투자를 받거나 진출할 때 유리하죠.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와 손잡은 협력사가 머스트 액셀러레이터 등 전 세계 70개입니다. 이들을 엮어 스타트업을 지원해야죠."
이 대표도 이를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해외 협력사들과 현지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외국업체들과 협력 기회를 만들 수 있죠.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의 협력사들은 이런 것을 요청할 권리가 있어요. 스타트업에 굉장한 기회죠."
"한국 스타트업, 시장 보는 눈 달라 매력적"
구글 입장에서 한국의 스타트업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김 총괄은 "한국 스타트업은 시장을 보는 눈이 다르다"고 짚었다. "인터넷 전화 다이얼패드, 커뮤니티 서비스 싸이월드, 동영상 서비스 판도라TV 등 세계 최초의 서비스는 모두 한국에서 나왔어요. 이들이 페이스북, 유튜브를 앞질렀죠. 그만큼 한국 스타트업은 매력적이죠."
그는 한국에서 트렌드를 앞서 가는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는 것은 규모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미국 스타트업은 미국 시장만 봐도 충분하기 때문에 해외 진출을 크게 고려하지 않아요. 반면 한국 스타트업은 국내 시장이 작아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하죠. 큰 트럭을 운전하면 사방을 두루 둘러보기 힘들어요. 반면 작은 자동차는 사방을 살피기 쉬워 동향 파악에 유리하죠."
다만 한국 스타트업의 자신감 부족은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은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특유의 겸손이 있어요. 그런데 세계 시장에서 겸손은 통하지 않아요. 결코 해외에 뒤처지지 않는 한국 스타트업의 기술력과 서비스 등을 자신 있게 표현해야 해요. 전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생각을 바꿔야죠."
코리안 드림 심는 것이 목표
그래서 김 총괄은 스타트업 스쿨에서 창업가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주고 싶다. 즉 코리안 드림을 심는 것이 그의 꿈이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을 믿어요. 한국에서도 스타트업 스쿨이 힘들지만 창업으로 행복하게 될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을 주고 싶어요. 기업가치 1조 원의 유니콘이 한두 개 나오면 희망을 가질 수 있겠죠."
이를 위해 김 총괄은 구글 벤처스 등 투자전문 계열사 등을 통해 스타트업 스쿨에서 공부한 창업가들이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이 대표도 초기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할 생각이다. "부산에서 유니콘이 나올 수 있도록 펀드와 개인 투자조합을 만들고 싶어요."
이를 위해 이 대표는 다음 단계로 구글과 글로벌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부산 지역에 만드는 것도 생각 중이다. "창업가뿐 아니라 스타트업에서 일할 사람, 즉 팀원도 같이 키워야 해요. 부산시에서 대학에 스타트업 스쿨을 만드는 것도 고려 중이니 함께 생각해 볼 만하죠."
영화 ‘친구’ 보며 우리말 배워
김 총괄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UC데이비스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나 대학 시절 창업을 하며 진로가 바뀌었다. "대학교 3학년 때 기숙사 친구들과 욜리지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했어요. 각 대학의 교수, 기숙사 음식 등을 리뷰하는 사이트였는데 2008년 금융 위기 때 투자를 받지 못해 접었죠."
이후 게임업체 징가와 구인구직 전문업체 몬스터에서 사업 개발을 맡았다. 그때 벤처투자업체 알토스벤처스의 한킴 대표 소개로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 대표를 만나 2015년 배달의민족에 합류했다. "배달의민족에서 2년간 행복하게 일했어요. 창업자들 모임에 참가하고 재미있게 지내면서 한국을 좋아하게 됐죠."
특히 그는 고향인 샌프란시스코처럼 바닷가 도시 부산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어려서 우리말을 전혀 못할 때 부산을 배경으로 찍은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를 여러 번 보며 우리말을 배웠어요. 그래서 부산 사투리에 매력을 느껴요."
그는 2017년 배달의민족을 그만두고 구글에 입사했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며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그는 "정치와 기업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제도로 세상을 바꾸지만 기업은 기술로 바꾸죠. 결국 일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점에서 정치와 기업은 지향점이 같아요. 미래를 만드는 것이죠."
부산=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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