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나이테’ 의성국가지질공원 Ⅱ
(2) ‘의성의 진산’ 금성산을 오르다
경북 의성 금성산은 멀리서 보아도 기품 있고 당당하다. 금성산은 의성의 주산이자 진산이다. 삼한시대 조문국의 유적지로 중생대 백악기 화산 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칼데라 지형이다. 금성산은 의성군이 인증 신청한 ‘의성국가지질공원’의 12개 지질명소 중 상징성이 가장 큰 곳이다.
의성 르네상스의 문을 여는 전기가 될 의성국가지질공원 인증 신청 최종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금성산을 오른다. 금성산의 빼어난 전망과 너른 품에 안기면서 국가지질공원 최종 후보지의 명소 금성산의 지질학적 특성을 알아본다.
의성의 지형은 동서로 놓인 쌍고치 모양이다. 땅콩 같아 보이기도 한다. 동쪽(오른쪽) 고치가 서쪽(왼쪽) 고치보다 조금 큰데 동쪽이 아래로 살짝 내려가 비스듬한 형태다. 서쪽 고치는 안계를 가운데 두고 안평, 신평, 안사, 다인, 단북, 단밀, 구천, 비안 등 8개 면이 둘러싸 만든다. 동쪽 고치는 군청 소재지 의성읍을 중심으로 단촌, 봉양, 금성, 가음, 춘산, 사곡, 옥산, 점곡 등 8개 면이 함께 이룬다. 산업이나 행정의 중심은 동쪽이다. 인구 밀도도 동쪽이 높다. 이제 고치의 고운 실을 풀어 의성국가지질공원의 명주를 짤 시간이다.
금성산은 의성군청 남쪽 9~10㎞ 거리에 있다. 군 전체로 보아 동남쪽 끝자락에 가깝다. 아래쪽에 치우친 산인데도 진산(주산)이라 하는 것은 옛 마을의 공간 구성이 흔히 그러해서다. 전통사회에서 마을은 대부분 산에 기대어 자리 잡았다. 이렇게 오래도록 이어져온 주거 공간의 입지적 특성이 ‘배산임수’다. 여기서 마을이 기대는 뒤쪽 산세를 진산(鎭山)이나 주산(主山)이라 하고 앞쪽 산을 안산(案山)이나 조산(祖山)이라 했다. 이러한 개념들은 마을의 공간 구성이나 건물 배치, 지도 작성, 장소 의미 구성 등에서 주요 고려 대상이자 기준점이었다.
이들을 단지 시대착오적 풍수나 발복 구현의 도구로만 폄하하기보다 주변이 산지로 둘러싸인 이 땅의 자연 환경에서 다양한 자연적 인문적 생태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금성산은 앞으로 인증될 의성국가지질공원의 가장 큰 배경이자 무대인 진산으로 풍부한 자연적 인문적 생태적 의미를 풀어놓고 쌓아갈 것이다. 의성국가지질공원 인증 신청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금성산의 지질학적 특성을 알아본다.
용문바위 ‘화산 활동이 남긴 걸작’
금성산 산행은 산자락 아래 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주차장 뒤쪽 산길을 들어서면 자연석 계단을 시작으로 경사로가 이어진다. 40~60도 정도로 가팔라 보이는 경사로는 거의 같은 오르막으로 정상까지 이어진다. 해발 531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얕잡아 보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미끄러져 발목을 다치거나 낙상을 당할 수 있다. 식생은 대부분 소나무다. 곳곳에 소나무 뿌리와 함께 암반이 드러나 있다. 척박한 땅에 뿌리 내린 소나무의 기운이 맑다. 산은 별다른 장식 없이도 묵직하고 강인하다.
30분 가까이 올랐을까. 길은 정상으로 곧장 가는 길과 용문바위로 가는 오른쪽 길로 갈린다. 오른쪽 길을 따라 다시 20분쯤 올랐다. 금방 앞으로 쏟아질 듯 압도적인 높이와 규모의 용문바위다. 거대한 바위 절벽에 하늘나라로 통하는 듯 널찍한 돌문이 굳세게 닫혀 있다. 닫힌 문의 위쪽으로 용이 승천했다는 바위 구멍이 하늘에 떠 있다. 용이 뚫고 간 저 구멍을 용문이라 했겠지만 수직 절벽에 굳게 닫힌 하늘문이야말로 용문이 아닐까. 얼마나 간절해야 열린 적 없는 저 바위문이 개벽하듯 열릴까 묻는 질문은 부질없다. 문득 의성국가지질공원의 조속한 인증을 기원하며 목례했다. 용문바위는 격렬한 화산 활동의 남긴 자연의 걸작이다.
중생대 백악기 회류 응회암 많아
금성산(金城山)이라는 이름은 ‘(조문국이 쌓은 산성이) 쇳덩어리처럼 견고하다’는 뜻으로 지은 쇠울산성이라는 당시의 성 이름에서 유래했다. 쇠울을 한문으로 옮겨 ‘금성’이다. 그 이름이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 활동으로 생긴 칼데라 지형에 잘 들어맞는다.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가 아니면 만들 수도 뭉갤 수도 없는 산이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지역은 오랜 세월과 함께 심하게 깎이고 벗겨져 대부분의 화산암은 이들을 만들어낸 화산 기원지역(source area)에 해당하는 칼데라와 같은 함몰지에 몰려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화산 지질은 지하에서 지표까지 한꺼번에 관통하며 일어난 여러 지질작용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다른 지질보다 복잡하다. 이런 곳에서 화산 지질은 분출뿐 아니라 관입에 의한 것도 매우 중요하다. 관입 화산암은 분출암의 기원지(source)로서 공급 통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칼데라는 가마솥을 의미하는 라틴어 '칼다리아(caldaria)'에서 유래된 스페인어다. 독일의 지질학자 레오폴드 폰 부흐가 명명했다. 금성산 화산지역은 대부분 염기성과 산성 화산암류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은 큰 콜드론의 중앙부에 독립된 소규모 화산암 복합체로 분포한다. 콜드론(cauldron)'은 산성 화산암류를 형성시켰던 화산작용의 후기에 이에 발생한 칼데라 함몰의 마지막 흔적이다. 이러한 화산암류를 만들어낸 사건은 백악기 후기에 일어났다. 그래서 금성산 화산지역은 백악기 이후 오랜 세월 침식돼 큰 규모의 칼데라 밖에 존재했을 것으로 믿어지는 화산암류가 완전히 깎이고 벗겨져 없어지고 더구나 함몰된 칼데라 내부에도 거의 대부분 깎여 칼데라 중앙부에만 소규모로 남아 있다.
산성 화산암류에는 칼데라 함몰의 원인이 되었던 회류(灰流) 응회암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가운데 상부의 회류 응회암은 심하게 용결되어 넓게 분포한다. 금성산에는 이 회류 응회암이 많다. 응회암(凝灰岩)은 화산재가 엉겨 굳은 암석인데 회류 응회암은 일반적인 응회암과 다르다. 회류 응회암은 용암과 함께 흘러내려 겉보기에 용암과 구별하기 어려운데 용결(熔結) 응회암이라고도 한다. 회류 응회암은 휘발성 물질을 많이 함유한 산성질 마그마가 지표로 분출할 때 화구로부터 뿜어져 나온 뜨거운 화산재가 공중으로 높이 솟구치지 못하고 지면을 따라 용암과 함께 빠르게 흘러내리다가 굳어서 형성된 암석이다.
화산암 복합체 체험·탐방지
금성산 화산지역에는 금성산 칼데라와 함께 화산암 복합체인 경상누층군이 있다. 금성산 화산지역은 경상분지의 중북부에 해당하는 의성 소분지 중앙부에 위치한다. 경상분지에는 퇴적암류와 화산암류로 이뤄진 경상누층군이 자리잡고 있다. 경상누층군에는 하부로부터 신동층군, 하양층군과 유천층군이 놓인다. 의성 소분지에는 이 가운데 화산성 퇴적암이 좁게 놓인 중부의 하양층군과 대부분 화산암으로 이뤄진 상부의 유천층군이 자리한다. 유천층군은 소량의 현무암질과 대부분인 안산암질 또는 유문암질의 용암과 화쇄암(화산 분출물이 쌓이고 굳어져서 생긴 암석)으로 구성되며 한반도 해안선에 거의 평행하게 활모양으로 넓게 분포한다.
금성산 칼데라는 직경이 약 8x10㎞이며 장축방향이 남북방향으로 놓인다. 금성산 화산암 복합체는 이 퇴적암류를 기반으로 하여 대부분 칼데라의 중앙부에 부정합으로 덮고 있다. 이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장경이 약 5㎞이고 단경이 북서 남동 방향으로 약 2.5㎞인 심장 모양을 이루고 있다. 금성산 화산암 복합체는 금성산 화산지역에서 산출되는 분출암과 관입암 등의 화산암류를 통틀어 일컫는다. 화학조성에 의하면 안산암(마그마가 지표 부근에서 갑자기 식어서 생긴 화성암)질 성분이 결여된 현무암(지하에서 마그마가 침전되고 결정화해 만들어진 화성암)과 유문암(규산염 함량이 높은 화산암. 용암의 흐름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Rhýax로부터 유래했다. 흐름(流)의 무늬(紋)가 나타나는 돌이라는 의미로 용암의 흐름 구조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질의 성분으로 나타낸다.
금성산 화산암층은 약 400m의 두께를 가지며 화학적인 성분에 따라서 현무암질 암류와 유문암질 암류로 나뉜다. 현무암질 암류는 대부분 유문암질 암류에 의해 덮여 있어 화산암 복합체의 바깥에만 대체로 얇게 노출되고 안쪽에는 유문암질 암류가 두껍게 놓인다. 이와 같이 금성산은 화산암 복합체의 구조를 체험 탐방할 수 있는 칼데라 지형으로 국가지질공원의 명소로 손색이 없다.
뜻밖에 한 아름 안긴 선물 같은 풍광
아까 갈림길에서 곧장 오리는 길이 궁금해 용문바위에서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직진 길을 계속 올랐다. 3개의 철제 계단을 오르자 병마훈련장이다. 이곳에서 오른쪽 길로 5~6분 걸으면 좀전에 가봤던 용문바위 위쪽이다. 위쪽에서는 소나무와 숲에 가려져 용문바위를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다시 돌아와 직진 길을 계속 오른다. 안내판에는 로프를 잡고 오른다고 했지만 철제 계단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철제 계단을 오르자 드디어 금성산 정상. 흔들바위 등을 거치며 오르내리는 길은 얼마 걷지 않아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정상 부근 전망대에서 펼쳐지는 해질녘 탑리리, 대리리, 학미리, 제오리, 운곡리, 만천리 일대 풍광은 저곳이 내가 살았던 세상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석양에 반사된 논과 밭, 물과 길, 집과 숲들이 제 속의 가장 그윽한 빛으로 물들었다. 이곳에서 이런 장관이 광활히 펼쳐질 줄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오만함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10여 분을 다시 걸어 흔들바위로 향했다. 정상에서 급한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가야 했다. 무너진 목책을 붙잡고 기어가듯 내려가자 흔들바위와 전망대였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와 하산길. 올라오는 길이 힘들었던 만큼 내려가는 길은 빠르고 수월했다. 낙상을 조심하면서도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하기 좋았다.
금성산에서는 2018년 흑요암(흑요석) 전석(轉石, 암반에서 떨어져 나와 흐르는 물과 함께 굴러 다니는 돌)이 발견돼 잠재적 흑요암 산출지 가능성을 두고 주목을 받았다. 흑요암은 매혹적인 흑·적색 또는 흑·회색의 띠나 혼합 형태로 나타나는데 준보석으로 각광 받는다. 원시인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무기·기구·도구·장신구로 사용했으며 고대 마야인들은 거울로 사용했다.
흑요석의 전형적인 흑옥색은 조밀하게 배열된 정자(晶子· 유리질 화성암에서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매우 미세한 결정)들이 많기 때문인데, 이런 작은 결정이 너무 많아 유리는 얇은 가장자리를 제외하고는 불투명하다. 이런 특성으로 흑요암은 지표에서 불안정해 풍화와 변질에 약한 탓에 백악기 이전의 노두(광맥, 지층, 석탄층의 일부가 땅 위로 드러난 것)가 보존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흑요석·금동관·조문국…곳곳 차별화 요소
국가지질공원의 지질명소로서 금성산은 지질학적 장소와 콘텐츠, 가치만을 가진 것이 아니다. 의성지역 금성산에는 삼국시대 신라 북부지방 유력 정치체가 존재했다. 금성산 고분군으로 통칭되고 있는 금성산 자락의 탑리, 학미리, 대리리 세 고분군이 그 증거다. 이곳에서 발굴된 금성산 고분군 장신구에 대한 관심은 1960년 탑리 고분의 고구려계 금동관 발굴을 시작으로 최근 대리리 고분군의 금동관모 발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지질공원은 단지 지리·지질학적 콘텐츠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 하는 역사·관광지로서의 가치도 갖는다. 지리적으로 신라의 변경이자 고구려 접경지로서 금성산 지역 정치체는 고구려의 형식과 문화에 근접했고 경주 중심의 신라 중앙 권력은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를 확립하려 했다. 이런 점에서 고구려 양식이 크게 섞인 금성산 고분군 출토 금동관과 관모, 이식(귀고리), 대금구(띠에 달아 꾸미는 쇠붙이 장식), 금동신발 등 장신구들은 경주 중심의 신라 중앙 권력과의 문화·정치적 역학 관계를 통해 경계와 틀을 넘어서려 한 금성산 정치체의 특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여전히 상당 부분이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조문국과 연계하는 스토리텔링의 개발도 또 하나의 차별성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국가지질공원 인증 신청 최종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금성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현실 너머를 상상하게 했다. 금성산 정상 전망대의 전망은 숨은 비경이었다. 새로운 길이 열리듯 뜻밖에 한 아름 꽃다발을 받은 기분이었다. 금성산은 국내에서 가장 생생한 화산 활동 체험·탕방지다. 의성국가지질공원 인증은 지역민에게 축복처럼 안기는 한 아름 꽃다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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