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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의 마음앓이

입력
2023.06.11 12: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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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하나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몰락을 예고했다가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예레미야 선지자'. 미켈란젤로, 1511, 프레스코화

하나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의 몰락을 예고했다가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예레미야 선지자'. 미켈란젤로, 1511, 프레스코화

영국에서 같이 유학 생활을 하던 독일인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요새 마음이 너무 편해. 영국에 있으니까 독일 뉴스를 보는 일이 없어서." 인터넷도 없던 당시 타국에서 산다는 건, 거의 고국과 단절된 삶이었다. 일면 참 편했다. 영국에서 사니까 그 나라의 문제가 신경 쓰이다가도 "내 나라 일도 아닌데 뭘" 하며 속 편히 지냈고, 고향인 한국 소식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한인 신문을 볼 때나 접했기 때문에 자주 마음 쓰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마음이 멀어지기 때문에 붙어 있던 몸도 떨어지는 거 아닌가? 어느 것이 더 강할까? 아무리 장거리 연애를 오래해도 마음이 가까우면 결국 하나가 된다. 아무리 떨어지려고 애를 써도, 마음이 떠나지 않으면 헤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흔한 말로 정떨어지면 서로가 자석의 같은 극처럼 되어 버린다.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다.

그 독일인 친구의 말은 사실 역설이었다. 자기 나라에 살 때 뉴스를 보며 속상해했던 것은 사실 그 친구가 고국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정이 없으면 관심도 가지 않아 속 편하다. 영국에 유학 와서 독일 소식을 덜 들을 뿐, 여전히 그 친구는 자기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고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들려오던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 소식에 속상했다. 2002년에는 월드컵을 영국에서 보면서는 신기하고 신이 났다. 몸은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떨어지지 않는다.

성경의 한 예언자는 하나님과 결별하고 싶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 보았다가 완전히 바보가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님이 자신을 상대로 사기를 치신 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주님, 주님께서 나를 속이셨으므로,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보다 더 강하셔서 나를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들이 날마다 나를 조롱합니다."(예레미야 20:7)

글쎄 어쩌면 이 예언자는 처음부터 바보였을 수도. 왜냐면 하나님이 그에게 시킨 일 자체가 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유를 들자면, 하나님이 이 예언자에게 청와대 앞이나 명동 한복판에 나가서 대한민국은 곧 적의 공격을 받아 파멸할 것이라고 외치라 한 것이다. 예언자는 정말로 그렇게 하고 공공의 적이 되었다.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할 때마다 '폭력'을 고발하고 '파멸'을 외치니, 주님의 말씀 때문에, 나는 날마다 치욕과 모욕거리가 됩니다."(20:8) 그는 바보가 맞는 것 같다.

마침내 예언자는 하나님과 결별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떠나지 못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주님을 말하지 않겠다. 다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 하고 결심하여 보지만, 그때마다 주님의 말씀이 나의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뼛속에까지 타들어 가니, 나는 견디다 못해 그만 항복하고 맙니다."(20:9) 예언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떠날 수 없도록 하나님은 장치를 해두셨다. 마음에 말이다. 몸은 거부하고 멀어지려 했지만, 그때마다 예언자의 마음은 다시 불타올랐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인간을 압도하는 구약 성서의 내용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음이 잡히면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잠언은 하나님이 인간의 어디에 공을 들이시는지 잘 전해준다.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신다."(17:3) 잠언은 인간도 자신의 어디에 공들여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 무엇보다도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4:23)

정이 가고 마음이 있으면 속 편할 수 없다.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는 무관심이다. 세상 속 편한 사람은 정도 없고 마음도 없는 무관심한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마음이 늘 힘들다. 무엇에든 무관심할 수 없고 정을 주기 때문이다.

기민석 목사·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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