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쇼크가 온다: 3-① 저출산 대책 난맥상]
효과 작고 포장지만 그럴싸한 저출산 정책
예산 등 권한·책임 지닌 저출산 조직 필요
일본 어린이가정청 신설, 참고 모델 삼아야
편집자주
1970년 100만 명에 달했던 한 해 출생아가 2002년 40만 명대로 내려앉은 지 20여 년. 기성세대 반도 미치지 못하는 2002년생 이후 세대들이 20대가 되면서 교육, 군대, 지방도시 등 사회 전반이 인구 부족 충격에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일보는 3부 12회에 걸쳐 '절반 세대'의 도래로 인한 시스템 붕괴와 대응 방안을 조명한다.
30대 후반 직장인 김승규(가명)씨는 올해 초 둘째가 태어나자 배우자 출산휴가 10일을 사용하기로 했다. 정부가 출산 직후 아빠 육아를 확산하기 위해 2019년부터 유급 3일에서 10일로 늘린 제도다. 회사에 휴가신청서를 올리자 인사팀 연락이 왔다. "다음 달 월급이 깎일 수 있다. 기본급은 전액, 법정수당은 일한 만큼 지급."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세 살배기 첫째를 돌봐야 해 출산휴가는 그대로 신청했다.
하지만 월급 400만 원 중 100만 원인 법정수당을 60만 원만 받는다는 인사팀 설명이 개운하진 않았다. 여름·겨울 휴가 때 5일 연차를 써도 법정수당을 모두 받았던 김씨. 그는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월급은 오히려 휴가 때보다 줄어드는 저출산 정책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저출산 정책 풍부하지만, 출산율 꼴찌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시작으로 380조 원을 쏟았다는 저출산 정책. 어떤 나라보다 저출산 정책이 풍부하다는 평가지만 그 결과는 세계 꼴찌 출산율 0.78명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의뢰로 부산경제연구소가 4월 내놓은 '초저출산 탈피 해외사례 검토 및 국내 적용방안 연구' 보고서 내용이다. "한국의 저출산 정책은 거의 모든 선진국 정책을 망라해 시행. 하지만 비효율적이고 산만한 정책 집행으로 행정력을 낭비하고 정책 실효성은 매우 낮음."
중소기업 직장인 박지혜(가명)씨는 1년 육아휴직 후 회사 복직을 앞둔 지난해 10월 둘째를 임신했다. 회사에 다시 육아휴직을 내겠다는 말을 언제, 어떻게 전할지 머리를 싸맸다. 어렵게 전한 사정에 회사 동료·상사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연년생 자녀를 둔 공무원 친구는 육아휴직을 3년씩 6년 쓸 수 있다던데 중소기업은 1년도 눈치 보인다"고 푸념했다.
보고서 분석은 저출산 정책이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고, 포장지만 그럴싸한 대책도 많다는 뜻으로 읽힌다. 앞서 소개한 배우자 출산휴가가 한 예다. 돈 걱정 없이 출산·육아에 전념하라는 이 제도의 취지를 현장은 100% 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측의 비용 절감 논리 앞에 막혀서다. 박지혜씨처럼 중소기업 직원은 사용하길 머뭇거리는 육아휴직도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다.
출산율 상승과 관련 없는, '무늬만 저출산 정책'도 적지 않다. 정부가 작성한 '4차(2021~202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저출산 기본계획)상 2022년도 시행계획을 보면 지난해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110억 원이다. 근로자가 휴가비 20만 원을 적립하면 기업, 정부가 10만 원씩 보태는 제도다.
장시간 근로 해소를 통해 저출산 완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제도의 논리는 다소 비약이 있다. 오히려 국내 여행을 유도하는 내수 활성화 대책에 가깝다. 위기 청소년 사회안전망 공급(710억 원), 전자미디어 과몰입 예방(21억 원),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294억 원) 등의 사업도 저출산 정책이라기엔 어색하다.
20년 저출산 겪었지만, '사령탑' 부재
과거 템플스테이 지원 사업 등이 담겨 중구난방이란 지적을 받았던 저출산 기본계획에서 여전히 같은 문제가 포착되고 있는 셈이다. 한 예산 관료는 "각 부처는 정부 예산을 잘 타내기 위해 각종 사업을 저출산과 연결 짓곤 한다"고 귀띔했다.
20년 가까이 저출산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안팎에선 책임과 권한을 갖고 저출산 정책을 끌고 나갈 '거버넌스의 부재'를 꼽는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가 '저출산 정책 사령탑'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를 전망·분석하며 범부처 계획을 심의합니다."
저출산위가 2005년 출범 이후 내걸고 있는 기능이다. 구체적으로 저출산 기본계획 수립 등을 통해 각 부처에 퍼져 있는 저출산 정책을 관리하고 방향 제시도 한다.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한 조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애초 저출산위 역할이 제한적인 탓이 크다. 농어업위원회 등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다른 위원회가 그렇듯 저출산위 역시 책임과 권한이 흐릿하다. 일반 부처처럼 예산을 배분하고 사업을 집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출산 정책을 실제 다루는 부처에 대한 저출산위의 장악력이 강하지도 않았다. 기획재정부 주도로 별도 운영된 인구위기대응 태스크포스(TF)는 저출산위의 낮은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상 역할이 겹쳤던 이 회의체는 2019년 4월 만들어져 5년 넘게 굴러갔다. 예산 편성권을 쥔 기재부의 인구위기대응 TF가 오히려 정책을 잘 설계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저출산위 해체, 정부 안팎서 나온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 따로 놀았던 저출산 정책 조직을 일원화했다. 저출산위, 기재부, 보건복지부 중심으로 저출산에 대응하는 인구정책기획단이 지난 달 출범한 것. 하지만 이 조직 역시 범부처 협의체 형태라 저출산 정책을 책임질 곳이 없긴 마찬가지다.
이에 저출산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저출산 관련 조직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을 겪은 일본 정부가 4월 발족시킨 '어린이가정청'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어린이가정청은 한국처럼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아동 관련 정책을 모두 흡수했다. 어린이가정청 설립 전후로 일본 정부는 공격적인 저출산 정책을 내놓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 비율을 2021년 14%에서 2030년 85%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 대표적이다.
저출산위 평가위원을 지낸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저출산위는 예산 조정 권한이 없어 일관적인 저출산 정책을 실행하기 어렵다"며 "저출산 정책을 총괄할 수 있는 인구 특임장관 또는 인구가족부 신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꼭 부처를 신설하지 않더라도 저출산위를 현행 체제로 끌고 가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문재인 정부 때 김부겸 국무총리가 코로나19 대책을 이끌었듯이, 전 부처를 아우르는 총리실 중심으로 저출산에 대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절반 쇼크가 온다' 글 싣는 순서
제1부 인구 충격 진앙지, 절반세대
①소멸은 시작됐다
②2038 대한민국 예측 시나리오
③절반세대 연애·결혼·출산 리포트
④절반세대 탄생의 기원
제2부 무너진 시스템 다시 짜자
①가족의 재구성
②직장의 재구성
③이주의 재구성
④병역의 재구성
⑤교육의 재구성
⑥연금의 재구성
제3부 절반세대가 행복한 세상
①저출산 대책 난맥상
②한국사회 전환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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