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식량안보 양극화
2019년에 비해 8배 악화한 시리아 사정
수단, 예멘 등 비산유국도 심각
지난달 튀니지 출장 중, 현지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인 '쿠스쿠스'를 맛보았다. 쿠스쿠스는 듀럼밀을 주요 재료로 사용하며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사랑받는 음식이다. 특별한 날이나 소중한 손님이 방문하면 빠지지 않고 내놓는 음식이기도 하다. 쿠스쿠스를 먹으면서 '밀 가격이 상승하고 공급이 부족함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이 음식을 즐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발생한 글로벌 식량 가격 상승을 고려한 의문이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해 왔고, 다수 중동 국가는 이 두 국가로부터 밀 수입을 의존했다. 2023년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부분 중동 국가에서 식량 가격은 상승했다. 특히 식량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 상승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난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흑해 항로를 이용한 곡물 수출을 방해하기 위해 '흑해곡물협정'을 중단했으며, 주요 곡물 수출 항구인 오데사 등을 타격했다. 이로 인해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세계식량가격지수가 상승하는 결과가 나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국제정치적 영향이 중동을 포함한 전 세계 식량 문제에 큰 파장을 낳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동의 식량안보 위기를 심화시키는 문제는 기후변화이다. 중동은 이미 물 부족 문제에 직면한 지역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지속적인 가뭄 탓에 이 문제는 날로 악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동 국가들의 농업 생산성 향상 노력은 큰 차질을 입고, 농작물의 수확량도 감소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세계은행은 기후변화로 인한 수자원 부족이 2050년까지 중동 국가들의 GDP를 6~14% 감소시키는 파급효과를 양산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편 중동 내에서 식량안보 상황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산유국인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2022년 글로벌 식량안보지수(GFSI) 세계 순위를 보면 아랍에미리트는 23위, 카타르는 30위, 사우디아라비아는 41위로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39위를 기록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는 인도 등 여러 국가와 함께 식량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식량 공급망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비산유국들의 상황은 다르다.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는 가운데 식량 위기도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2022년 글로벌 식량안보지수에서 이집트는 77위, 수단은 105위, 예멘은 111위, 시리아는 113위로 최하위에 기록되었다. 특히 수단, 예멘, 시리아는 정치적 혼란과 함께 걸프 산유국처럼 강력한 재정 지원이 없어 위기 대응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의 식량안보 위기는 취약한 빈곤층에 가장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식품 가격 인플레이션이 걱정거리로 부상하면서 빈곤층은 일상적인 식품 구매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레바논, 이집트 등 여러 국가에서는 달러 대비 각국 화폐의 환율 상승이 겹치는 바람에 피부로 체감하는 식량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시리아 대표인 켄 크로슬리(Kenn Crossley)에 따르면, 2019년에는 시리아 평균 가정이 월급으로 필요한 식량을 두 배 이상 살 수 있었지만, 현재는 같은 수입으로 필요 식량의 4분의 1만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어느 사회나 식량은 인간 생존의 기본이 된다. 중동의 식량안보 위기 해결을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 빈곤층의 어려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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