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보금자리프로젝트·동물권행동 카라 공동 구조
고등학교 교사인 이주영(57)씨의 기부로 현실화
지난 8일 강원 화천군에 남은 마지막 사육곰 한 마리가 동물단체가 운영하는 보호시설(생크추어리)로 옮겨졌다. 이로써 전국에 남은 사육곰 농장은 19개에서 18개가 됐다.
10일 동물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에 따르면 이들은 화천군 사육곰 농장에서 웅담채취용으로 사육되던 반달가슴곰(10세·암컷) 한 마리를 구조했다. 이번 구조는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이주영(57)씨가 사육곰 구조와 구조 후 보호 비용을 기부하면서 가능했다.
이씨는 "지구에 몇 남지 않은 몸집이 큰 동물 중 하나인 북극곰과 TV에서 웅담(곰 쓸개) 채취를 위해 처참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육곰을 보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며 "그러던 중 곰보금자리프로젝트의 사육곰 구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사육곰을 위한 기부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사육곰 산업은 1981년 농가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정부의 권장 아래 시작됐지만 4년 뒤 곰 보호 여론에 따라 수입이 금지되고, 1993년 정부가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수출마저 막혔다. 정부는 현재 웅담 채취용으로 열 살 이상의 사육곰에 한해 도축을 허용하고 있다.
이번에 구조된 사육곰 농장 역시 한때 20마리 이상의 곰을 길렀지만 지금은 곰 한 마리만 남은 상태였다. 남은 곰도 도살이 가능한 열 살이 되자 웅담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나 소유주가 정부 주도의 사육곰 생크추어리가 건립된다는 소식에 판매를 거부하면서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구조된 곰은 후원자의 희망에 따라 후원자의 이름을 딴 '주영이'라고 불리며 새 삶을 살게 됐다. 단체는 기부자인 이씨에게 곰에게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씨는 "작은 철창에서 태어나 평생 갇혀 지낸 곰의 인생이 사람으로 태어나 좁은 식견과 여러 제약에 갇혀 살아온 내 모습과 겹쳐졌다"며 "서로 힘내고 잘 살아보자는 마음을 담아 주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설명했다.
주영이는 앞서 두 단체가 2021년부터 화천군 내 사육곰 농가들과 협의해 구조한 13마리(4마리 사망)와 자체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게 된다. 단체는 기존의 농장 시설을 보호시설로 개조해 사육곰들에게 과일과 채소 등의 먹이를 제공하고, 적응훈련을 통해 방사장에 방사하는 등 곰들이 본연의 습성을 충족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서 활동하는 박정윤 수의사는 "활동가들은 지난 7월 오랫동안 척추질환을 앓았던 유식이가 떠난 후 빈 방을 보며 가장 먼저 주영이를 떠올렸다"며 "민간단체와 시민이 나서 도움이 필요한 사육곰들을 구조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전국 사육곰 299마리, 공용 시설 지어져도 절반 갈 곳 없어
하지만 전국 사육곰 농장에는 여전히 299마리(6월 기준)의 사육곰이 남아 있다. 최인수 카라 활동가는 "이번 구조로 화천군에서 사육곰이 완전히 사라진 점은 의미가 크다"면서도 "아직도 전국에는 300마리에 가까운 사육곰들이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되고 도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육곰 산업 종식 내용을 담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달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돼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앞두고 있다. 다만 환경부가 추진 중인 공영 사육곰 보호시설 조성은 계획대로 완공(전남 구례 49마리, 충남 서천 70마리 규모)되더라도 전국에 남은 사육곰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는 "정부의 사육곰 시설이 지어지더라도 현재 남아 있는 사육곰의 절반가량은 여전히 갈 곳이 없다"며 "더욱이 보호시설 운영 주체에 따라 곰들의 복지 수준도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우려된다"고 전했다. 최 대표는 "단체 보호시설도 주어진 여건 아래 사육곰을 구조하고,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는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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