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수ㆍ소ㆍ문’은 ‘수상하고 소소한 문화 뒷얘기’의 줄임말로 우리가 외면하거나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문화계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모발 검사라도 해야 하나, 그런 우스갯말을 동료들과 주고받고는 합니다.”
한 중견 영화제작자의 말입니다. 유명 배우 유아인과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여론의 질타를 잇달아 받은 뒤 캐스팅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착실했던 거물' 이선균이라서 더 큰 여파
영화계가 이선균 사태로 뒤숭숭합니다. 이선균이 출연한 미개봉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행복의 나라’ 관계자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제작비는 185억 원이고, ‘행복의 나라’는 1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됩니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투자배급사 CJ ENM은 올해 심각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영화사업부문에 대해 최근 내부 특별감사에 들어갔는데, 이선균 사태로 더욱 엄중한 상황이 됐다고 전해집니다. 한국 영화가 잇달아 흥행 참패를 맞은 상황에서 영화계 대형 악재로 여겨지고 있기도 합니다.
배우가 마약 관련 물의를 일으킨 적은 예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배우 주지훈은 2009년 마약류인 엑스터시와 케타민을 투약했다가 3년가량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2017년에는 그룹 빅뱅 출신 배우 최승현이 대마초 흡연 혐의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 출연으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유사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영화계가 이선균의 마약 혐의를 더 심각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선균은 그동안 사건·사고에 연루된 적이 없습니다. 가정을 안정적으로 꾸려왔던 40대 후반 중년배우인 데다 평소 소탈한 면모를 보였던 터라 예상 밖이었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한 제작자는 “영화계 지인들과 술자리를 해도 허름한 선술집에서 만나는 걸 즐겼다”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선균이 코미디와 멜로, 스릴러 등 어떤 장르나 어떤 배역이든 소화했던 만능형 배우라는 점에서도 충격이 큽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커리어가 절정에 오른 데다 쓰임새가 많은 배우였다”며 “제작에 들어가는 영화들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배우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잘 노는 신인 배우 계약 꺼려”
제작사들의 배우 캐스팅은 예전보다 더 신중해졌습니다. 배우들의 사생활을 좀 더 신중히 들여다보고 주변에 세세히 탐문하는 경우가 늘기도 했습니다. 바른 생활을 해온 걸로 여겨졌던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를 받을 정도이니 믿을 배우가 어디 있겠냐는 불안이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한 드라마 제작자는 “이선균 여파로 캐스팅에 신경이 곤두서있다”며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배우가 추가로 있는지 지라시(사설정보지) 같은 걸 살펴보기는 하나 믿을 만한 정보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매니지먼트 회사들도 고민이 깊습니다. 소속 배우들의 사생활 관리에 고삐를 죄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하루 24시간 다 큰 성인 배우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배우들이 일탈 행위를 할 틈은 언제든지 있기 마련입니다. 그저 배우들이 자기관리를 잘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매니지먼트 회사들은 배우 계약에 더욱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배우를 새로 영입할 때 클럽을 즐겨 다니며 술을 자주 마시는지가 주요 기준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술자리가 잦으면 마약의 유혹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가정에서죠. 영화계 한 관계자는 “마약이 예전보다 퍼진 상황이라 경계심이 더 높아졌다”며 “배우가 물의를 빚으면 광고 같은 경우 위약금을 많이 물어줘야 하는데, 매니지먼트 회사가 법적 대응을 함께해야 하니 피해가 크기 마련”이라고 전했습니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제2의 유아인’ ‘제2 이선균’이 나오지 않도록 심리치료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배우들이 자신들이 맡았던 역할에서 정신적으로 빠져나오지 못해 감정조절을 잘하지 못하니 술이나 약물에 의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 중견 영화제작자는 “할리우드의 경우 촬영이 끝나면 배우들이 심리치료를 받도록 조치한다”면서 “한국은 심리치료를 부정적으로 바라봐 꺼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제작자는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줬으나 이선균 개인에 대한 비난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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