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권 영등포구청장
"경부선 철도, 영등포 관통·발전 저해"
"지하화되면 첨단 4차산업 유치"
"문래동 기계단지 통째 이전 추진"
"경부선 철도로 120년 동안 남북으로 나뉜 영등포가 곧 하나 돼 명품도시가 될 겁니다. 기왕이면 낮에도 막히는 경인로도 지하화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난 19일 최호권(61) 영등포구청장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경부선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의 구도심 내 지상 철도를 지하로 옮기고 지상 부지를 개발하는 ‘철도 지하화 특별법’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것. 일제강점기인 1905년 개통한 경부선 철도는 물류수송과 인적교류의 중추로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한 고마운 존재인 한편, 영등포구 입장에선 구를 관통해 남북으로 단절시킨,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기도 했다. 영등포구 주민의 숙원이면서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돼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경부선 철도 지하화가 여야 합의로 국회 첫 관문을 넘은 것이다.
26일 한국일보와 만난 최 구청장은 지난해 10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찾아가 특별법 제정을 요청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하나 될 영등포와 미래세대를 위한 청사진을 그리겠다"고 약속했다. 구의회 예결위에서 개발 방안을 연구할 ‘경부선 일대 종합발전 마스터플랜’ 용역(3억5,000만 원) 안건도 통과돼 내년 본예산에 반영됐다.
최 구청장은 한발 더 나아가 상습 정체도로인 경인로의 지하화, 문래동 기계금속단지 통째 이전도 제안하며 "영등포를 인공지능(AI)·로봇·빅데이터 등 4차산업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준공업지역의 용적률 상향도 추진해 청년세대가 선호하는 '직주근접' 도시로 개조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말로만 지역발전을 내세우기보다는 오랜 행정 경험을 살려 주민 편의를 최우선하는 구정을 펼치고 있다. 영등포와의 인연은 30년이 훌쩍 넘었다. 행정고시 합격 후 1992년 5월 첫 공직생활을 영등포구 공보실장으로 시작했다. 서울시, 청와대, 인도 뉴델리 총영사 등을 역임한 뒤 지난해 30년 만에 ‘첫 직장’ 영등포구에 구청장으로 돌아왔다. 다음은 일문일답.
_영등포구의 숙원 사업인 '철도 지하화 특별법'이 속도를 내고 있다.
"휴전선으로 남북이 나뉜 것처럼, 영등포는 경부선 철로로 120년 동안 단절됐다. 소음, 진동, 개발 규제 등으로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고, 지역 발전에 어려움이 많았다. 지하화되면 서울역~용산~금천~구로~안양~군포까지 철로 양쪽의 어마어마한 부지를 개발해 발전시킬 수 있다. 규제로 피해를 본 땅이 기회의 땅이 된다. 영등포구 구간(대방역~신도림역, 총 3.4㎞)에 문화 휴식 공간은 물론 창업 및 4차산업 관련 기관을 유치하는 등 영등포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청사진을 그려보겠다. "
_21대 국회 임기(5월 29일)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특별법이 통과될까?
"(여야 간 이견이 없어) 상임위와 법사위, 본회의 통과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다. 내년 4월 총선도 앞두고 있다. 철도 지하화가 추진될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들이 가급적 자신의 임기 내 성과를 내고 싶어해 논의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본다."
"상습 정체 '경인로'도 지하도로 추가 건설하자"
최 구청장은 경부선 철도 지하화 사업을 계기로 "이왕이면 경인로도 지하도로를 추가 건설하는 방안도 계획 단계에서 검토해보자"고 밝혔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로터리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를 잇는 28㎞ 도로인 경인로는 상습 정체 구간이다. 러시아워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낮에도, 때로는 밤에도 밀린다. 서울과 경기 부천, 인천을 연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_경인로는 왜 지하화가 필요한가?
"신도림과 금천 등 관외에서 유입되는 차량의 절반은 영등포구를 그냥 통과해서다. 영등포에 볼일이 있어 오는 것이 아니고, 서울의 도심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유일한 지름길이라 그렇다. 지하도로를 만들면 이 차량은 혼잡한 지상도로로 다닐 이유가 없다. 경인로를 지하화해 강북으로 이어지는 마포대교나 강남을 가로지르는 올림픽대로로 연결하면 교통혼잡과 그로 인한 각종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의도를 고밀 개발해도 교통량이 분산된다."
_노후화한 문래동 기계금속단지는 어떻게 개발할 계획인가?
"이곳은 산업화 시대 한강의 기적을 이끈 영등포의 제조업 경쟁력 근간이었지만, 임대료 상승과 시설 노후화로 쇠퇴하고 있다. 첨단산업의 기초가 되는 뿌리기술 기업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 단지 내 1,279개 공장 통째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관계부처의 지원도 필수다. 통째 이전이 성사되면 연구개발(R&D)센터나 지식산업센터를 조성해 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로봇 등 신산업을 유치할 생각이다."
_통째 이전이 가능할까?
"인구소멸 시대라 지방이나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 인근 관심 있는 지자체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 유치 지자체는 인구가 수천 명 늘고, 법인세 등 세수도 생긴다. 또 아파트와 상가, 학교, 병원도 들어서면 작은 신도시가 생기는 것과 다름없다. 현재 사장님들의 90%가 사업장을 빌려 쓰고 있어, 더 나은 환경에서 본인의 공장도 갖고 싶어한다. 4월부터 진행한 '이전 타당성 검토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결과도 조만간 나온다. 전문가와 구청, 이해당사자 등 종합 검토 후 최적의 장소를 선정하겠다."
_주거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영등포구 면적 중 문래동 일대를 비롯해 20%가 준공업지역이다. 준공업지역 내 공동주택 용적률은 250%로 제한돼, 30년 이상 노후된 아파트를 정비하려 해도 사업성이 낮아 어렵다. 그래서 국민임대주택, 행복주택, 장기전세주택,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장기일반 민간임대주택이 포함된 공동주택을 건립하는 경우 400%까지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조례안 개정을 김종길 시의원을 비롯한 서남권 시의원들이 추진 중이다. 양질의 일자리에 주거가 어우러진 '직주근접' 도시로 만들겠다."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효도하는 구청장"
최 구청장은 초고령화(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 시대 대비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한국은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를 대비하자"는 게 최 구청장의 지론이다. 그는 실제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어르신들을 보살피고 있다.
_시내 유일한 '요양보호사' 구청장이다.
"초고령화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올해 1~5월 관내 경로당 170곳을 모두 둘러봤더니 시설이 열악했다. 화장실이 없는 곳도 있다. 관내 재건축이나 재개발 현장 80여 곳이 있는데, 담당 국장에게 '경로당 시설을 꼭 좀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운동하고, 노래부르고, 쉬고, 인터넷도 할 수 있는 경로당(스마트실버센터)으로 만들면, 구청이 용적률을 높여주는 식이다. 경로당 운영비도 20% 증액했다."
_'요양보호가족 돌봄봉사단' 호응도 좋다
"치매나 거동이 불편해 돌봐야 할 구성원이 있는 가족에게 휴식을 제공하려 마련한 제도다. 올해 초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 350명, 일반인 350명을 모집, 2인 1조(요양보호 자격자+일반인)로 신청 가정을 방문해 4시간 돌본다. 어르신 병원 진료와 목욕, 집안 청소까지 해주면 보호자인 다른 가족은 잠시나마 용무를 보거나 기분 전환할 수 있다. 치매 환자는 평균 10년 이상 생존한다. 그 기간 독박요양, 독박간병, 독박돌봄하는 가족은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힘들다. 이건 돈 문제가 아니다."
구는 지난달 기준 어르신 111명에게 201건의 돌봄봉사를 했다. 이 제도는 이달 실시한 온라인 투표(주민 567명, 직원 806명 참여)에서 구민과 직원들이 가장 공감한 '우수 행정' 대상으로 선정됐다. 최 구청장은 "제도 시행·평가 후 정부와 서울시에 건의해 전국으로 확대하고 싶다"며 "영등포구로 인해 전국 어르신들이 혜택을 본다면 그것이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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