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퀘이사와 블랙홀 등 온갖 천체를 품은 '우주'는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대상이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우주에 대한 탐구 작업과 그것이 밝혀낸 우주의 모습을 알기 쉽게 소개한다.
중생대 공룡 소멸 운석만큼
과학자 의욕 꺾는 연구비 삭감
이익만 좇는 세태 부채질 우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지난해 말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대폭 삭감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연구 현장에서는 예산 삭감이 자신의 연구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1월에 접어들면서 연구비 감액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접하게 됐다.
우주를 연구하는 필자의 경우, 수행하고 있는 2개의 연구과제 중 한 과제는 25%, 또 다른 과제는 10% 예산이 삭감됐다. 다른 연구자들도 대동소이하게, 또는 더 많은 예산 삭감 소식을 들은 것으로 안다. 우리나라 발전의 원동력인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 왜 그런 예산 삭감이 불가피했는지 설득력 있는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 채 진행된 이번 연구비 대폭 삭감 사태는 한국 과학사에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주의 사건을 떠올리며 애써 희망적인 생각을 해보려 한다.
우주와 지구를 둘러싼 참사라 할 수 있는 사건으로 운석 충돌을 들 수 있다. 지구가 속한 태양계에는 수많은 소천체가 떠돌고 있다. 이 중 지구에 떨어진 소천체가 운석이다. 대부분 운석 충돌은 그 규모가 작아서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가지만 그중 지름 약 10㎞가 넘는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지면 지구 생명체를 크게 위협하게 된다. 그런 운석이 약 6,500만 년 전 멕시코 유카탄반도 앞바다에 떨어졌다. 2019년 텍사스 대학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그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100억 개에 맞먹을 만큼 엄청났다고 한다. 당시 지구 생명체의 갑은 공룡이었는데 이 운석 충돌을 도화선으로 공룡을 비롯한 수많은 종이 멸종했다.
그런데 생명체에게 큰 참사라 할 수 있는 이 사건이 결국은 지구 생명체의 진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화석 기록을 보면 공룡멸종 직후 생명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가혹한 환경 변화에 적응한 여러 새로운 종이 탄생하면서 생명체 종이 더욱 다양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공룡멸종 후에는 주변 온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포유류가 득세하기 시작했고 인간도 그 포유류의 진화 끝에 생긴 종이다.
사실 공룡이 득세한 중생대의 시발점인 2억3,000만 년 전 등 지구상 생명체 진화의 여러 터닝 포인트에 커다란 운석 충돌 사건이 있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운석 충돌과 같이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생명체 절멸과 그 후에 있었던 생명체의 다양화를 이끌었다는 것은 역설적이면서도 흥미롭다.
운석 충돌처럼 이번 R&D 예산 삭감 사태는 앞으로 수년 아니 그 이상으로 과학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당장 연구 환경의 악화는 물론, 젊은 세대들이 과학을 통해 세상을 발전시키는 진취적인 삶보다는 고소득을 보장하는 더 안정된 직업을 추구하도록 만든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뼈아프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운석 충돌의 경우 세계적으로 태양계 소천체의 위치 변화를 정밀 추적하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어떤 소천체가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지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장기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번과 같은 어이없는 R&D 예산 삭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예산 삭감이 일어나게 된 연유와 책임자를 제대로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과학자를 비롯한 유권자들이 투표 등으로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해야 할 것이다. 과학자들이 항상 쏟는 많은 노력에 그런 노력이 더해진다면, 운석 충돌 후에 다시 생명체가 번성한 것처럼, 과학계도 이번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 새롭게 도약할 날을 맞이하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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