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로펌행 막기 위한 당근책
'법원의 허리'로서 사법부를 지탱하던 고법 판사들이 줄사표를 내며 대형 로펌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계속되자, 대법원이 수도권에서 뽑힌 고법 판사의 지방 근무를 최소화하는 등의 당근을 제시하기로 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이날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을 통해 "이번 정기인사에서 지방권 고법 재판장 공석 충원에 필요한 범위 내의 지방 순환 근무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수도권 고법 판사의 지방 순환 근무 규모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고법 판사는 항소심 재판만 담당하는 경력 15년 차 이상의 중견 이상 법관이다. 고법 판사는 법원별로 뽑히는데, 크게 서울·인천·수원 등 수도권 고법과 대전·대구·광주 등 지방권 고법으로 나뉜다. 현재 수도권 고법 판사는 수도권에서 5년 근무를 마친 뒤 정년 때까지 '지방 3년→수도권 3년→지방 3년→수도권 3년' 패턴이 반복되는 식으로 근무를 한다.
이런 순환 근무는 고법 판사의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지방에 순환근무를 해야 할 시점에 이미 자녀가 학교를 다니는 등 가정생활의 어려움이 커진 반면, 급여를 많이 주는 대형 로펌 등으로 빠져나갈 유인은 크기 때문이다. 천 처장 또한 "지방 순환근무 명목의 수도권 고법 판사 전보 인사로 생활의 안정성이 저해됐고, 이는 고법판사의 조기 사직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한국일보가 확보한 '법관 퇴직 자료'에 따르면 고법 판사는 2010년대 내내 자발적 사직자(명예퇴직·의원면직)가 한 자릿 수대였으나 2020년대 들어서 10명 대로 뛰어오른 뒤 개선되지 않고 있다.
천 처장은 올해 새로 뽑을 수도권 고법 판사의 문턱도 높였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지방법원에서 3년 근무를 마친 지법 부장판사 중에서 고법 판사를 선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종전 제도대로라면 올해 수도권 고법 판사는 최대 사법연수원 38기부터 지원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법연수원 35기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천 처장은 "수도권 고법판사가 선발성 조기 발탁 인사인 것처럼 인식돼 과도한 쏠림 현상이 벌어졌다"며 "이는 지법판사 사기 저하로 이어져 1심과 항소심 법관의 전문성 제고 등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천 처장은 나아가 법원장이 장기미제 사건을 처리하고, 재판부 근무기간을 늘리는(재판장 2→3년, 배석판사 1→2년) 내용을 골자로 하는 내규를 마련했다고도 밝혔다. 천 처장은 "한 법원에서의 사무분담 변경은 심리의 단절과 비효율을 야기하고, 이는 재판지연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재판을 받는 당사자 및 국민의 피해로 돌아간다는 지적이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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