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근로자를 5명에서 49명까지 고용한 사업주가 27일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으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게 되면서 가장 체감할 변화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의 최상위 목표인 경영목표에 안전보건 부문을 포함하고, 위험 요인 점검 절차를 마련해 반년에 한 번씩 실시하며, 실제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해 긴급조치 매뉴얼을 만들고, 현장 위험 요인을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직원들에게 정기적으로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사망 사고를 포함한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게끔 예방에 만전을 기하라는 것인데, 중대재해법은 그런 조치를 다했는지를 수시로 확인하겠다는 규정 없이 5년간 문서로 보관하라고만 했다. 이마저 근로자 10인 미만 소상공인은 문서 보관 의무가 없다. 실상 안전보건관리체계 수립부터 이행까지 모두 업체 자율에 맡긴 셈이다. 물론 불운하게도 중대재해 사고가 터진다면, 사업주는 수사를 맡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그간 안전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지 추궁받을 것이다. 사고 현장이 위험 작업이 이뤄지는 곳인데도 안전 조치를 안 했다면, 사업주는 이전에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따라 징역이나 벌금형을 피하기 어려웠다.
다만 중대재해법상 사업주의 의무는 안전 조치 대상을 일일이 열거한 산안법상 의무보다 포괄적일 수밖에 없고 불이행에 따른 처벌 규정은 한층 강화된 터라, 중소사업주가 이 법을 '막연한 공포'로 여긴다고 해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하루하루 매출을 납품을 공기를 맞추기 빠듯한데, 정부는 '산업안전 대진단'을 선언하며 모든 사업장을 들쑤실 기세이고, 한편으론 여야가 며칠 못 가 법 확대 시행을 도로 거둬들일 것도 같고···.
사업주의 불만과 기대가 범벅된 상황에서 창궐하고 있는 게 '빵집·카페 사장도 감옥 가게 생겼다'는 류의 '공포 마케팅'이다. 당정이 추진하는 중대재해법 확대 2년 추가 유예가 25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불발된 다음 날, 윤석열 대통령이 "중소기업의 어려움과 민생 경제를 도외시한 야당의 무책임한 행위"라며 유감을 표명한 것은 그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정부 수장으로서 앞서 3년 유예 기간을 허송세월한 책임은 언급조차 없었다.
상기하자면 중대재해법이 의율하는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다. 다시 말해 인명 피해나 반복된 중상을 초래한 심각한 산재가 발생해야 비로소 법이 적용된다.
공포 마케팅 단골 소재인 빵집·카페에 초점을 맞춰 최신 중대재해 사고통계(2022년 기준)를 봐도 마케팅 수위가 과하지 싶다. 재작년 중대재해 사망자 644명 가운데 512명(79.5%)이 건설업·제조업에서 나왔고, 제조업 사망자 가운데 빵집을 일부 포함하는 식료품제조업 사망자 12명은 공장에서 희생된 사례였으며, 대부분의 카페 ·빵집이 속한 음식점업은 사망자가 전무했다. 또 다른 국가 승인통계를 마저 소개하자면, 2021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 77만여 곳 가운데 이번에 중대재해법을 새로 적용받는 5~49인 업체 비율은 7.1%이고, 92.5%는 애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5인 미만 업체다.
이런 확률적 기대를 배반하고 종업원을 위험에 빠뜨려 숨지게 한 빵집 사장이 있다면 마땅히 오라를 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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