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달 자와드 미자르 자말 호소(0세), 압델 칼레크 파디 칼레드 알 바바(0세)···자카리아 마르완 아흐메드 주나이드(17세), 지아드 유세프 유니스 아부 아시(17세).’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가 만든 ‘그들의 이름을 알아라(Know Their Names)’라는 인터랙티브 사이트에 나열된 이름 중 일부다.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침투에 따른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면 보복 공격으로 희생된 1만 명의 팔레스타인 0~17세 명단이다.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려도 끝이 없었다. 태어나 첫 생일도 맞지 못한 영아부터 곧 어른이 될 꿈에 부풀었을 청소년들까지, 그 귀하디 귀한 생명을 누가 앗아갔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후 4개월 만에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2만9,000여 명에 달했다. 하마스 공격으로 숨진 이스라엘 민간인 1,200여 명과 이스라엘군 전사자 230여 명도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목숨이 없다.
이 참혹한 전쟁은 누구의 책임인가. 유대교 안식일 새벽 이스라엘 남부에 침투했던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전쟁 발발의 직접적 원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이슬람교 성지 알아크사 사원을 모욕하고 가자지구를 압박하는 등 이들을 자극한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원인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바람을 탄 유대인이 1948년 5월 영국과 유엔의 무책임 속에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한 시점을 꼽을 수 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후 팔레스타인 지역 점령도 마찬가지다. 아니 책임을 더 따지다 보면 결국 고대 가나안 땅을 침공한 로마 제국이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식의 역사 논쟁이 비참한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리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밖에 없다. 도망 다니는 하마스 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는 네타냐후가 정치 생명 연장의 욕심을 버리는 게 급선무다. 15년 장기 집권 중 뇌물수수, 배임, 사기 등 개인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2022년 우여곡절 끝에 극우파 손을 잡고 다시 총리가 된 뒤 사법부 무력화를 밀어붙이다 국민들의 저항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던 게 전쟁 직전 네타냐후의 상황이다. 전쟁이 그의 정치 생명만 늘려준 셈이다.
하마스의 잔인함도 문제였지만 그 뒤 도를 넘어선 이스라엘의 강경 보복, 국제사회의 전쟁 중단 압박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는 공격을 멈추는 순간 총리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점을 네타냐후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 연장을 위해 극우를 결집하고 대결 분위기를 고취시킨 뒤 전쟁 뒤편에서 이득을 취하는 추악함. 정치가 안보를 뒤흔든 못된 사례다.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실무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이렇게 변명한다.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어떠한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그런데 세상은 다 안다. 아이히만이 직접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네타냐후 역시 ‘나는 직접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변명만 할 것인가. 역사의 죄인이 안 되려면 ‘전쟁을 멈추자’는 합리적인 이스라엘 시민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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