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영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편집자주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는 청년들에게 문학도 하나의 쉼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작품 중 빛나는 하나를 골라내기란 어렵지요.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으로 제55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 송지현 작가가 청년들의 '자연스러운 독서 자세 추구'를 지지하는 마음을 담아 <한국일보>를 통해 책을 추천합니다.
‘나’라는 단어의 의미가 지닌 복잡함에 때때로 사로잡힌다. 사로잡혀서 단어의 형태를 바라본다. 그 단순한 형태를 바라보다 보면 단숨에 의미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이 있다.
우다영 작가의 단편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는 ‘나’에 사로잡히는 순간들을 포착한 소설집이다. 그 ‘나’들은 때로 증식하고 무화되고 혼자였다가 다른 나와 포개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SF를 표방하는 이 소설은 정말이지 우리의 삶이 존재하는 방식과 닮았다.
총 다섯 편이 실린 소설집에서 인상 깊게 읽은 소설 두 편을 소개한다.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단편은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다. 소설의 기본 설정은 이렇다. 성인이 되려면 알파와 오메가로 나뉜 ‘나’들이 합치돼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싫어한다. 둘의 생활 습관은 물론이고 서로의 취향, 성향까지도 정반대다. 그렇게 둘은 알파와 오메가인 ‘나’로 존재하다가 어느 날 밤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 화해의 순간이 지나가고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온전한 ‘나’가 된다.
두 번째로 말하고 싶은 소설은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이다. 이 소설은 ‘아즈깔’이라는 풀을 통해 인간이 전생을 기억하게 된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인간들은 전생을 통해 수없이 반복돼 온 ‘나=타인’을 감각한다. 나를 타인으로 인지한 그들이 택하게 되는 미래는 아주 다를 것 같지만 거대한 세계에서 바라보면 결국 ‘나’의 선택이다.
무수히 다른 내가 돼 보는 소설들을 읽고 난 뒤 다시 돌아와 ‘나’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정말 나만의 것인가. ‘나’는 단 한 번도 타인이었던 적이 없는가. 우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적 없는 다양한 성질, 성품, 성향, 성별을 마주하고 내 안의 낯선 나들과 건강하거나 불행한 관계를 맺은 것이 지금의 우리”라고. 그러니까 애초에 우리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매일 밤 퇴근하고 돌아와 어두운 집 안에 불을 켤 때면 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한다. 하루 종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전기와 가스를 이용해 밥을 짓는다. TV를 켜고 화면 안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과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또 한 번 세계와 연결된다. 연결된 세계를 바라보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어떤 일엔 가슴 아파하고 어떤 일엔 웃는다. 나의 삶과 나의 웃음과 나의 눈물과 나의 사유는 세계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결국 타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를 인지하는 순간. 그리고 인지가 사라지는 순간. 사라졌다가 다시 ‘나’로 뭉쳐지는 순간. 포착하기 어려운 그 순간을 일상을 넘은 이야기로 만들어 낸 이 소설집은 나에게는 아름답고 어려운 실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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