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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평양에 간다면

입력
2024.02.26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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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19년 6월 홍콩 시위가 달아오를 때다. 반중 구호를 외치는 군중과 뒤섞여 돌아다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시진핑 주석이 북한에 간다고 중국이 발표했다는 것이다. 연초부터 숱하게 거론되던 방한은 허상에 그쳤다. 누가 중국의 친구인지 명확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숙소로 뛰어가 기사를 올렸다. 민주화 열망으로 들끓는 곳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두 체제의 정상외교를 전망했다. 동북아를 강타할 만한 대형 이벤트였다. 서둘러 베이징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시 주석의 첫 방북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 시내를 누비는 장면이 종일 TV 화면을 채웠다. 넉 달 전 김 위원장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퇴짜 맞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든든한 뒷배와 보란 듯 밀착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북한은 이듬해 코로나19로 다시 궁지에 몰렸다. 국경을 닫고는 좀처럼 열지 않았다. 뒤늦게 봉쇄를 풀었지만 끝없는 도발 야욕에 갈수록 제재 강도가 세졌다. 오로지 북한 손만 잡았던 형제국 쿠바마저 급기야 한국과 전격 수교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또 다른 배후가 전면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3월 대선을 치르고 4월쯤 평양을 찾는 방안이 유력하다. 살상무기를 주고받으며 참혹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2년 넘게 끌어온 주범과 종범이 지난해 9월 이후 다시 만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 바이든(가운데)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별도로 3국 회담을 갖기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 바이든(가운데)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별도로 3국 회담을 갖기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뉴시스

앞서 회담은 군사협력에 초점을 맞췄다. 러시아의 정찰위성과 핵잠수함 기술을 북한에 전수했다. 이제 불량국가들의 정치적 결탁만 남았다. 미국의 군사지원이 한미동맹으로 발전했듯, 러시아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꿍꿍이를 벌일 수도 있다. 대북 압박을 무용지물로 만들 치명적 위협이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 하지만 군사와 정치는 다르다. 핵 보유를 정치적으로 인정하는 순간 비핵화는 끝난다.” 전직 고위관료의 말이다. 러시아를 등에 업은 북한이 미국에 군축을 재촉하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국은 끼어들 틈이 없다. 비핵화의 오랜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북한은 이미 한민족을 국가관계로 둔갑시켜 적개심을 키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시 주석은 5년 전 주눅 든 김 위원장을 북돋우려 애썼다. 반면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호전성을 부추기며 몰염치의 끝판왕으로 치닫는 마약 같은 거래가 될 공산이 크다. 최근 러시아 정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노골적으로 편향돼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은 ‘핵 선제 공격’을 법에 못 박았는데도 두둔했다. 북한을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나 다름없다.

푸틴, 시진핑, 김정은. 집권 기간을 합하면 50년에 달한다. 현 정부 들어 한미일 공조를 최대치로 끌어올렸지만 북중러 철권통치 연대는 견고하다. 이에 맞서 러시아 대선 직후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열린다. 미국이 주도하다 한국에 바통을 넘겼다. 껄끄러운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윤 대통령의 외교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다.

한반도의 봄은 늘 긴장감이 흘렀다. 핵실험에 어수선하거나 미사일이 불을 뿜었다. 올해는 국지도발 우려도 상당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북풍에 더해 시베리아 강풍이 불어올지 모른다. 유권자의 냉철한 선택이 중요한 시점이다. 안보 또한 우리 삶의 일부이지만, 외부 변수에 휘둘려 판단이 흐려져선 안 된다. 예고된 위기를 정부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렸다.

김광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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