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박사의 쓰레기 이야기]
재활용 책임 생산자에 있지만
모호한 분리배출 표시에 소비자 혼란
명확하고 세분화된 표시로 나아가야
편집자주
그러잖아도 심각했던 쓰레기 문제가 코로나19 이후 더욱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쓰레기 문제는 생태계 파괴뿐 아니라 주민 간, 지역 간, 나라 간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쓰레기 박사'의 눈으로 쓰레기 문제의 핵심과 해법을 짚어보려 합니다.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 '지금 우리 곁의 쓰레기'의 저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4주에 한 번씩 수요일에 연재합니다.
페트병이나 캔, 유리병 라벨을 보면 삼각형의 분리배출표시를 볼 수 있다. 삼각형 도형 안에 페트병, 플라스틱, 비닐, 캔, 유리병, 종이 글자가 있고, 아랫부분에 마개나 라벨 등의 재질이 표시되어 있다. 재활용을 방해하는 재질 및 구조라는 평가를 받은 경우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글자가 추가된다.
분리배출표시의 의미가 무엇일까? 우선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적용되는 포장재라는 의미가 있다.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생산자가 재활용 책임을 지는 페트병 등의 포장재는 의무적으로 분리배출표시를 해야 한다. 생산자는 재활용 비용을 가격에 포함시켜 판매한 후 그 돈으로 재활용사업자를 지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할 때 재활용 비용을 지불한 셈이 된다. 소비자는 이미 재활용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쓰레기로 배출할 때에는 재활용품으로 분리배출하는 게 맞다. 종량제 봉투로 배출하면 재활용 비용과 쓰레기 처리 비용을 모두 부담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포장재에 의무적으로 표시된 분리배출표시는 소비자에게 분리배출의 권리를 부여한 표시이기도 하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의 의미를 생각하면 소비자는 분리배출표시가 된 포장재는 그냥 분리배출하면 된다. 분리배출 후 실제 재활용이 될 것인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분리배출된 이후 얼마를 선별해서 재활용할 것인지는 생산자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활용 어려움 등급표시는 소비자에게 혼선을 준다. 종량제 봉투로 버리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말 대신 ‘재활용 용이성 낮음’ 등의 좀 더 중립적인 단어로 변경하는 것이 좋겠다.
올해부터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적용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일반팩에 멸균팩이 섞일 경우 멸균팩이 일반팩의 재활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재활용 어려움 등급을 받은 것인데, 지금은 일반팩과 멸균팩을 따로 선별해서 각각 재활용하도록 되어 있다. 멸균팩을 따로 선별하면 과자상자 등의 종이제품(백판지)으로 재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종이제품으로 재활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결격 사유가 있는 멸균팩만을 재활용 어려움 등급으로 판정해야 한다. 멸균팩 전체를 재활용 어려움 등급으로 일괄 분류하는 것은 재활용 용이성 등급 평가 원칙에 어긋난다. 멸균팩을 따로 분류해서 재활용하도록 하면서 멸균팩 전체에 종량제 봉투 배출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강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대상이 아닌 포장재나 제품에 분리배출표시를 할 경우에는 환경부에 지정을 받아야 한다. 생산자가 지정 신청을 하면 환경부는 재활용 가능 여부를 검토한 후 지정한다. 재활용이 되지 않거나 책임을 지지 않는 제품 혹은 포장재에 생산자 임의로 분리배출표시를 하는 것은 녹색사기다. 막아야 한다. 다만 재활용이 잘될 수 있는 것은 좀 더 편하게 분리배출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지회사가 지정을 받은 종이제품을 식품회사 등이 포장재로 사용할 경우 식품회사별 지정 신청 없이도 분리배출표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괄지정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순환경제 시대에 분리배출표시제도의 역할은 앞으로 더 강화되어야 한다. 분리배출표시 의무 대상을 포장재뿐만 아니라 건전지까지 확대하고 모호한 의미는 명확하게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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