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또 고집을 부렸다. 선거 개입 논란을 무릅쓰고 전국을 훑고 다니더니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여당의 앞길을 막았다. 피의자 이종섭 대사가 떠밀리듯 호주에서 돌아왔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약속대련을 즐길 상황이 아닌데도 총선을 앞두고 민심의 요구에 귀를 닫았다. 대통령의 결단을 재촉하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멋쩍게 운명 공동체를 외치며 갈등을 애써 봉합하는 사이 불통의 늪은 더 깊어졌다.
구호로 내건 '국민 눈높이'는 공허했다. 윤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 직접 챙긴 민생토론회가 스무 번이 넘는다. 하지만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고 공수처와 잘잘못을 따지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선거철은 몸을 낮춰 공감대를 넓히고 겸허하게 민의를 담아내는 시기다. 지금도 이럴진대 나중에는 눈치 보는 시늉이나 할까. 4월 총선을 치르고 나면 향후 2년 동안 정치가 유권자의 선택에 마음 졸일 전국 단위 선거는 없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간극이 뚜렷해졌다. 윤 대통령이 '원칙'을 고수하며 뜸들이자 한 위원장은 '상식'으로 맞받았다. 용산의 인사권자는 등 돌린 여론에 아랑곳없었다. 출마자들의 아우성이 극에 달해 총선 패배의 그림자가 엄습하는데도 버텼다. 지켜보던 야당은 200석 운운하고 탄핵까지 입에 올리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정녕 승리가 절실한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여권 넘버 1·2는 선거에 임하는 셈법이 달랐다.
정부·여당의 강점이 실종됐다. 총선 이후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쫓기듯 출국한 대사에 온통 관심이 쏠려 팍팍한 살림살이는 뒷전으로 밀렸다. 반대 주장을 공박하는 데 화력을 쏟아붓지만 정권 심판론은 도리어 공고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 위원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뭉개고 도덕적 우위를 뽐내는 데 꽂혀 있다. 화려한 언변에 피로가 가중되는 건 야당의 막말 퍼레이드 못지않다.
4년 전 총선은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야당의 파상공세에 윤석열 정부는 차별화를 꾀하지 못하고 벌써 2년을 흘려보냈다. 지역구는 포기하고 오로지 비례 의석에 승부 거는 조국혁신당마저 “느그들 쫄았제”라고 으스댈 정도로 한 위원장과 여당은 코너에 몰렸다. 여소야대의 수적 열세를 탓하는 무책임한 행태가 선거 이후에도 반복된다면 윤 대통령의 남은 3년은 암담하다. 진영 논리에 갇혀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극적으로 판을 뒤집는다 해도 우려는 여전하다. 레임덕 경보는 일단 멎겠지만 선거 전리품을 둘러싼 파열음까지 막기는 어렵다. 한 위원장이 명품백 의혹으로 역린을 건드렸다가 맥없이 물러선 연초와는 상황이 다르다. 총선에 뛰어든 윤 대통령 측근들마저 보편적 잣대를 강조하며 민심의 편에 섰다. 이를 외면하는 단임제 대통령의 일방적 소명의식은 자중지란을 앞당길 뿐이다.
투표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한다. 그렇다고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기대를 접어야 한다면 민주주의 축제는 존재 이유가 없다. 상대 지지층을 겨냥해 “집에서 쉬시라”는 야당 대표의 비아냥은 수준 이하다. 누가 권력의 중심인지 과시하는 데 주력하는 대통령의 뻣뻣함도 자기반성과 거리가 멀다. 뭔가 달라 보이던 여당 원톱은 엉뚱하게 운동권 청산에 사활을 걸었다. 내 삶을 바꿀 수도 있는 한 표에 대한 절실함이 사라졌다. 총선은 고작 2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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