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의 동행]
서울 1호선 구일역 이민호 역무원 인터뷰
10년차인데도 세전 230만 원 무기계약직
코레일 자회사 137곳 역무원이 처한 현실
공공기관 내 임금격차, 정부 해결의지 없나
지하철 출구를 나서니 눈앞에 고척스카이돔이 보인다. 서울지하철 1호선 구일역은 프로야구 시즌을 맞은 야구팬들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하지만 봄의 활기가 느껴지는 이곳에 뿌리 깊은 ‘차별’이 정차해 있다는 건 대부분 알지 못한다.
구일역 역무원 이민호(48)씨는 2014년 9월 입사한 10년 차 베테랑이다. 지난 15일 그를 만나 공기업 자회사 직원들이 겪는 차별 실태를 들어봤다. 월급 얘기부터 꺼낸 그는 인터뷰 내내 착잡해 보였다. “월급이 세전 230만 원이고, 세후는 200만 원 정도 돼요. 식대, 야간 수당까지 포함해서요. 동료가 쉬는 날 대신 일을 하는 대체 근무를 할 때만 더 받죠.”
역무원이 원래 심각한 박봉인 건가. 그렇지는 않다. 같은 일을 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 역무원들은 훨씬 많이 받는다. 민호씨는 “저희 평균 임금이 코레일 역무원 대비 51.5% 정도 돼요. 코레일은 호봉제도 있으니까”라고 했다.
그가 역무원 일을 하며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 코레일이 아니라 코레일네트웍스 소속이기 때문이다. 코레일네트웍스는 KTX역과 수도권 광역전철역의 운영· 관리 등 철도 전반의 서비스를 담당하는 코레일 계열사로 2004년 설립됐다. 코레일 전체 관리 역 중 137개 역을 코레일네트웍스가 맡아 운영한다.
자회사 차별과 현장직 차별이 합쳐졌다
민호씨의 낮은 임금에는 자회사 차별에 이어 현장직 차별이 결합돼 있다. 그는 ①코레일 역무원보다 임금을 200만 원가량 덜 받고, ②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정규직(주로 사무 업무)보다는 100만 원가량(추정)을 덜 받는다. 황당한 점은 코레일네트웍스의 주 업무는 역 위탁운영이고 역무원과 같은 현장직이 회사 정체성의 핵심인데도 본사 일반직만 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역장·역무원까지 모두 무기계약직이다.
사무 위주의 일반정규직 정원은 117명에 불과하고, 역무직 등 현업직 정원은 1,557명(지난해 말 기준)에 이르는데, 소수가 핵심인력인 다수를 차별하며 이득을 보는 피라미드 구조이다. 코레일네트웍스 홈페이지 채용공고를 보면 일반 초급 사무직(6급)의 연봉은 3,200만 원, 역무원 등의 연봉은 2,470만 원으로 제시돼 있다.
민호씨는 침울하게 말했다. “정확하게 공개는 안 하는데, 우리 본사 직원은 코레일 임금의 70~80%는 받는다고 합니다.”
한 달 200만 원 정도를 손에 쥐는데도 일은 정신없이 바쁘다. “스크린도어가 고장 났을 때 초동조치를 해야 하고요. 고객들이 역사를 편히 이용할 수 있게 안내를 하고, 비품도 조사하고 관리하고요. 안내판이나 등, 바닥 같은 시설물을 살피고 고장 난 것, 바꿔야 할 것을 점검해요.”
앞뒤의 구로역과 개봉역 역무원들은 코레일 소속으로 같은 일을 하고도 임금이 두 배 많다. 코레일 역무원들도 자회사 역무원들이 당하는 차별을 납득하지 못한다고 한다. 민호씨는 “동일노동을 하는데 왜 이렇게 차별을 주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코레일 직원분들도 계세요. 반반이긴 하지만요”라고 했다.
추가 근무 수당 때문에 임금 인상 어렵다?
구일역에 근무하는 역무원은 모두 4명이다. 승강장이 분산돼 있고 역무실도 두 곳인 점 등이 고려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명으로 줄었다가 이달 18일부터 1명이 더 배치됐다. 다른 역은 보통 역무원이 2명인데 이런 인원으로 역을 24시간 관리한다.
마지막 열차가 떠난 후에도 역무원은 현장을 지키며 숙직을 한다. 민호씨는 이틀 낮 근무, 이틀 밤 근무의 불규칙한 생활을 하고 있다. “낮 근무는 오전 9시 출근해서 저녁 7시 퇴근이고, 밤 근무는 저녁 7시에 출근해서 아침 9시에 퇴근해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9시 다시 낮 근무로 출근하는 거지요.”
야간 수당은 밤 10~12시, 그리고 새벽 4~5시 반 정도만 나온다. “그사이에 늘 잘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화재 경보가 울리거나, 겨울철 동파라거나 이럴 때가 종종 있는데 못 자고 업무를 해야 하거든요.”
박봉인데 인원까지 부족하다. 기자가 코레일네트웍스 본사에 요구해서 받은 자료를 보면, 역무직 정원이 1,257명인데, 현원은 1,104명에 불과하다. 정년이 넘은 기간제 비정규직(83명)을 합쳐도 70명이 부족하다. 상담직(콜센터)도 정원이 181명인데 45명이 부족하다. 반면 본사 일반정규직은 118명으로 정원(117명)보다 1명 많다.
예비 인력이 거의 없다 보니 연차나 지정휴무, 보건휴가를 쓸 때 동료가 근무를 대신해야 한다. 민호씨는 “연속 48시간 근무도 해봤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주 52시간을 지켜야 하니 그렇게는 못 하죠. 대체 근무 때문에 주 52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경우는, 공식적으로 회사에 알리지 않고 서로 (사비로) 돈(대체 근무 수당)을 줘요”라고 한탄했다.
인원 부족은 근로시간 증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대체 근무를 해서 받게 되는 수당도 기획재정부가 정한 임금 인상률에 포함돼 실질적 임금 상승을 어렵게 한다. 기재부 지침에 따르면, 올해 코레일네트웍스 인건비 총액 인상률 상한은 3.5%다. 민호씨는 “그 금액이 이미 대체 수당으로 거의 다 책정돼서 올려줄 것이 별로 없다”는 식의 답변을 듣는다고 한다.
현재 받는 임금을 보면 기본적인 월급은 거의 매년 그대로이고 자기 일에 더해서 대체 근무를 해야만 조금이라도 더 받는 구조이다.
해마다 벌어지는 사무직과 임금 격차
“정규직(코레일네트웍스 본사 일반직)하고 저희하고 임금 차이가 크잖아요. 같은 임금 인상률을 적용하면 액수가 달라요. 해가 지날수록 갭(임금 격차)이 더 커지는 거죠.” 민호씨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코레일네트웍스는 기재부의 인건비 지침을 적용받는 공공기관이다. 기재부는 평균임금이 낮은 공공기관에 인건비 인상이 좀 더 가능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는데, 그 혜택이 실제로 임금이 낮은 무기계약직·기간제보다 정규직에게 더 돌아가고 있다.
‘2024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을 보면 2024년도 총인건비 예산은 전년의 2.5% 이내에서 증액하되, 해당산업 평균임금의 90% 이하이며 공공기관 평균의 60% 이하이면 3.5% 이내에서 인상하도록 하고 있다. 총인건비는 원칙적으로 일반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정원을 기준으로 편성한다.
코레일네트웍스가 내부적으로 정규직 임금 인상률을 억제하고, 무기계약직·기간제 임금 인상률을 더 높이면 되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다. 기재부 지침도 일반정규직과 무기계약직에 대한 인건비는 별도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어, 지침을 보면 임금이 낮은 무기계약직 임금을 더 올려주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기획재정부 공공제도기획과 관계자는 “기관 내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임금은 노사합의 사항”이라며 “정규직과 무기직을 각 얼마씩 올리라는 식의 가이드를 주지는 않고, 총액 내에서 노사합의로 결정하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임금이 낮은 무기직·기간제 처우 개선에 대한 배점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평가 부분은 다른 과 소관인데, (이런 제안을) 같이 공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코레일네트웍스 본사 관계자도 “노조가 분리돼 있어 별도 임금교섭을 통해 인상률이 결정된다”며 “정규직 중에서도 하위직급(6급)은 무기계약직보다 임금 수준이 더 낮다”고 주장했다.
공공기관 경영공시 알리오를 보면 지난해 코레일네트웍스의 일반정규직 신입사원 초임은 3,350만 원이다. 하지만 정규직은 무기직과 달리 호봉제(1~6급)가 적용돼 저임금은 일시적이다. 일반정규직 1인당 평균 연봉은 5,459만 원이며, 무기계약직은 3,739만 원으로 나온다. 기본적으로 공시 임금은 복지포인트나 명절 상여금까지 포함한 세전 임금이며, 무기직 임금엔 동료 몫의 추가 대체 근로를 해준 수당도 포함된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서재유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동조합 코레일네트웍스 지부장은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규 일반직들의 정확한 임금 구조를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레일의 경우, 일반정규직뿐이며 무기계약직이 없다. 지난해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6,993만 원이었다. 초임은 3,493만 원으로 코레일네트웍스 정규직들이 저임금이라고 주장한 초봉과 별로 차이가 안 났다.
현장직 위하지 않는 ‘낙하산’ 사장님만 거쳐가
민호씨는 “사장은 대부분 코레일 출신들이 한다”고 설명했다. 연봉이 1억 원(2023년 9,800만 원)에 이르지만, 역무원 처우개선에는 관심이 없다.
코레일 소속 역무원들은 출퇴근 시 이용하는 KTX 등 열차 요금을 내지 않는데, 코레일네트웍스 등 자회사 역무원들은 그런 혜택이 없다. 지난해 일부 직원들이 출퇴근하며 무임승차했다는 정황이 국토교통부 감사에서 드러나, 환수조치와 철도경찰 수사를 받았다. 민호씨는 “(역무직 중에) 여객 담당(승차권 발매서비스)하는 직원은 멀리 발령이 나는데, 그 사람들이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다”며 “교통비 지원이 없으니 ‘역 직원입니다’ 하고 타고 다녔던 건데 그걸 보호를 안 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원청인 코레일이 무기직 임금을 올려주라며 용역비를 올려 내려보냈는데도 소용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이전 파업 때 코레일에서 용역비 100억 원을 추가로 받아왔어요. ‘코레일 임금의 80% 정도까지 맞춰주겠다’고 합의가 됐죠. 그런데 코레일네트웍스에서 그 돈을 받고도 우리 임금은 안 올렸어요.”
기재부의 인건비 인상 제한 지침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서재유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투쟁해 기본급을 300만 원 정도로 하는 계약을 받아낸 것인데, 그걸 기재부 지침 때문에 안 준다”며 “그래서 그 돈이 남자 다시 코레일에서 배당금으로 가져갔다”고 분개했다.
서 지부장은 “업무 지원을 하는 사람들만 정규직이고 역장, 역무원, 주차관리원(철도역 주차장 관리)은 1년 일하나 20년 일하나 (임금을) 똑같이 받는다”며 “정규직들은 회계, 근태관리 같은 것을 맡는데 사실상 군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단협에서 과거 기재부가 코레일네트웍스 사측 편을 들면서 무기계약직 임금을 일반정규직보다 더 올리는 것을 반대했었다고 전했다.
결혼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
민호씨는 3개월 수습기간 98만 원, 직후엔 세후 130만 원 정도를 받았다. 최저임금 수준이긴 하지만 이제 200만 원가량을 버는 그에게 “가정은 꾸렸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못 꾸렸죠. 여직원들도 회사 직원이랑은 결혼 안 한다고 하잖아요. 직원들끼리 서로.”
‘공정’을 기치로 내걸면서 동일노동을 하는 자회사 직원을 차별하는 풍토에 대해서도 민호씨는 한탄했다. ‘공부해서 코레일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는 비아냥에 대해 그는 “많이 듣는 말”이라고 했다. “분규가 생기면 기사 댓글에 그런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요. 철도 노조 중에서도 젊은 층이나 신입사원들은 ‘힘들게 들어왔는데 너희는 왜 날로 먹으려 하냐’, ‘들어오고 싶으면 똑같이 시험 봐서 들어와라’ 그런 식이죠.”
민호씨는 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채용시험이라는 게 누가 뛰어나서 되고, 모자라서 안 된다기보다 한 끗 차이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동일노동이고요. 코레일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업무를 한다고 해도 우리보다 더 잘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바로 옆 개봉역(코레일 운영)과 여기랑 똑같은 업무를 하는 거잖아요.”
‘왜 그런 대우를 받고 일하나,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시선도 사회엔 많다. 이른바 ‘누칼협(누가 그 일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나)’ 정신이다. 민호씨는 “젊은 사람들이 너무 시선이 좁다고 해야 하나. 어떤 발전적 생각을 못 하고 현재 정책에 맞춰 살아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솔직히 저는 그만둬도 돼요. 다른 회사 가면 되지만, 후배들은 계속 불합리한 차별을 받고 있는 건데 여기서 우리가 안 바꾸면 누가 바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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