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지역 주민들만 장을 보고 있을 경기 수원시 영동시장이 7일 처음 보는 ‘외지인’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의류를 파는 장모씨는 ‘이게 무슨 일이가’ 하며 두리번거리다 귀동냥으로 곧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곳에 온다는 말을 들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유력 인사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장씨는 잠시 일손을 내려놓고 기다렸지만 이날 장씨가 본 것은 끝없는 인파 끝에 한 위원장을 둘러싼 ‘셀카봉’의 벽뿐이었다.
같은 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방문한 서울 종로구 창신시장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기다란 삼각대, 셀카봉, 짐벌(안정적인 촬영 등을 위해 장착기기의 수평 상태를 유지시켜 주는 장치)과 보조배터리로 무장한 ‘유튜버’ 무리 탓에 중앙정치인이 지역민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유력 정치인의 시장 방문 등 공개 일정에는 늘 인파가 모여들었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유튜버 무리가 정치인과 시민 사이의 벽이 됐다. 덕분에 한 위원장과 이 대표를 수행·경호하는 인력은 똘똘 뭉친 유튜버 벽을 뚫고 동선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임무가 됐다.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니냐는 비판 대상이 될지언정 중앙정치를 이끄는 인사가 보편 유권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가뜩이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현재 정치 상황에서는 완벽히 통제·조율할 수 없는 현장의 날것 그대로인 목소리가 절실하다.
그러나 사전에 일정이 조율된 몇 명을 제외하면 정작 일반 주민들은 열성 지지층을 대상으로 방송하는 유튜버들에게 가로막혀 정치인의 얼굴조차 보기 쉽지 않다. 현장의 혼잡도가 너무 높아져 사전 조율된 방문지조차 건너뛰는 경우도 있었다. 고립된 여의도를 벗어나 민심을 듣는다는 현장 행보의 취지가 무색하게 정당의 대표급 인사들이 가장 밀접한 ‘스킨십’을 하게 되는 것은 어딜 가나 따라붙는 유튜버가 됐다.
지지하는 정당 일정 중심으로 방송하는 정치 유튜브 특성상 유튜버 집단은 서로 더 뭉치고 더 양극화된다. 간혹 반대 정치 성향의 유튜버가 현장의 중심에 접근하면 ‘다수파’ 유튜버들은 이를 내쫓기 위해 언어·물리적 충돌도 불사한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이 정치인에게 싫은 소리라도 하면 가장 앞장서서 발언자를 규탄한다. 온라인상에서 정치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걸 넘어서 오프라인 현장에서도 양극화에 일조하는 셈이다.
여야 현장 실무진들은 입을 모아 ‘통제 안 되는 유튜버들 때문에 곤란하다’고 하면서도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실무진의 고충과는 별개로,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되고 우호적인 방송만 해주는 유튜버들을 적극적으로 배척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필터링에 의해 늘 접하던 정보의 벽에 갇히는 현상을 '필터 버블'이라고 한다. 물리적인 벽이자 비판 의견을 침묵시키는 역할까지 자처하는 유튜버들에게 둘러싸인 중앙정치인은 마치 '유튜버 버블'에 갇힌 것 같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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