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4·10 총선 후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그렇다. 여당 참패에 대한 윤 대통령의 사과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윤 대통령만큼 사과에 인색했던 전직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윤 대통령의 집권 2년에 대한 평가였기에 “내 탓이오” 식의 대국민 사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총선 엿새 만에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첫 발언은 “국무위원 여러분, 국정의 최우선은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셋째도 민생입니다”였다. 윤 대통령은 방송 내내 직접적인 사과를 회피했다. 총선 참패의 원인이 된 김건희 여사 문제나 해병대원 사망 사건 문제 등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방송 4시간이 지난 후에야 “국민 뜻을 잘 살피고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가 총리 입을 통해서 전달됐다. 생중계를 놔두고 비공개로 참모들만 듣는 사과를 택했다. 반성과 사과를 비공개로 하는 사람도 있나. 윤 대통령의 사과가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공허한 사과와 변치 않은 인물은 한국 축구에도 있다.
한국 23세 이하 축구 대표팀은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하면서 1988년 서울 대회부터 이어온 올림픽 본선 연속 진출이 9회에서 중단됐다. 한국 축구가 40년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26일 공식 홈페이지에 5문장의 짧은 사과문을 게재했다.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이다. 1년 넘게 이어져 온 축구협회의 헛발질을 고려한다면 수장인 정몽규 회장의 직접 사과를 기대했지만 협회는 짧은 사과문으로 갈음했다. 더군다나 사과문에는 정 회장이나 수뇌부 누구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다. 사과의 주체가 빠져있는 형식적이고 공허한 사과에 축구팬 누구도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만을 놓고 협회장의 사과를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참사는 축구협회의 잘못된 선택이 모이고 모여 만든 최악의 결과였다. 클린스만 전 A대표팀 감독 선임은 충분한 내부 논의 과정 없이 정 회장 독단이 작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과적으로 클린스만은 재택근무 논란과 무전술, 선수단 관리 실패 등 후유증만 남기고 1년도 안 돼 경질됐다. 축구협회는 이번엔 올림픽 본선 진출에 집중해야 할 황선홍 감독을 A대표팀 임시 감독으로 임명하는 또 다른 악수를 택했다.
그동안에도 협회는 미숙한 행정으로도 비판을 자초했다. 올해 6월 예정됐던 천안축구종합센터 건립이 늦어지면서 각급 대표팀은 훈련장을 찾아 떠돌고 있다. 지난해 3월엔 과거 승부 조작에 가담했던 축구인들을 기습 사면했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전면 철회했다.
연이은 헛발질로 한국 축구가 위기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축구협회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시끄러울 때면 슬그머니 뒤로 빠져 있던 정 회장의 과거 행태가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그 역시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장 4선 준비 얘기만 나오고 있다.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있는 정 회장을 비롯해 축구협회 수뇌부에게 모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여기서 더 헛발질을 이어간다면 한국 축구에 되돌릴 수 없는 또 다른 참사가 벌어질지 모른다. 올림픽 본선이 아닌,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를 맞이하는 날이 머지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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