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재미학자의 입장에서 한국의 사회, 정치, 경제, 외교·안보 등에 관한 주요 이슈를 다루고자 한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반도의 모습과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글로벌 시각에서 제시하려 한다.
여소야대 속 여전히 막강한 대통령 권력
1987년 체제, 역사적 소명 다했기 때문
'제4의 민주화' 위한 윤 대통령 결단 기대
4월 총선 후 여러 외신과 인터뷰를 했다. 공통된 질문 중 하나가 윤석열 대통령이 어떻게 될 것인가였다. 행간을 보면 탄핵 가능성을 떠보는 듯싶어 마음이 개운치는 않았지만 그만큼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거대야당의 협조 없이 정국을 이끌어가긴 어렵고, 조기 레임덕이 올 수도 있지만 대통령의 권한은 여전히 막강하다. 윤 대통령은 정국운영의 동력을 살리며 더 나아가 역사에 남을 기회가 있다. 내각제 개헌이다. 현 권력구조가 1987년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의 산물로서 이제 그 소명을 다한 것은 대부분 동의하는 사안이다. 다만 정치 지도자들의 용기와 결단이 부족해 아직까지 바꾸지 못하고 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며 세계 10위권으로 발돋움한 한국은 의원내각제를 할 여건을 충분히 갖추었다. 높은 교육, 경제 수준에 시민 의식은 크게 성숙됐으며 민주주의 경험도 축적됐다. 정당 제도화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독식의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정치적 양극화와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정치가 사회, 경제, 문화를 리드하기는커녕 소모적인 정쟁으로 미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1960년에 들어섰다가 단명한 장면 내각을 떠올리거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박정희 군부세력이 내각제와 정치적 혼란을 동일시한 이유가 크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보다 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가정도 옳지 않다. 영국의 대처, 독일의 메르켈, 일본의 아베 전 총리 등은 모두 내각제하에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자유 민주 선진국가에서 대통령제를 하는 곳은 연방제인 미국뿐이고 프랑스는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해 운영하고 있다.
내각제 아래에서는 다수당이 집권함으로써 민의를 보다 잘 대변할 수 있고, 의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 소수당과 연정을 위한 대화와 타협을 해야 한다. 정당 또한 대통령이나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기보다, 다양한 정치 세력의 공존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의 완화와 정책적 연속성을 도모할 수 있다. 국민의 불신임을 받으면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유연성도 있다. 현 제도하에선 대통령의 지지율이 통치 불능의 수준으로 떨어져도 하야나 탄핵 말고는 교체할 방법이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내각제로의 개헌과 함께 현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 이번 총선에선 254개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약 50.5%, 국민의힘은 45.1%를 얻어 불과 5.4%포인트의 차이를 보였지만 의석수에선 161석(63.4%)대 90석(35.4%)으로 71석의 큰 차이를 보였다. 승자독식인 소선거구제의 산물이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조정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의 완화도 기대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나 현 21대 국회에서도 권력구조와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논의가 있었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제도의 변화 없이 '넥스트 코리아'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상대를 향해 '입법독재'와 '거부권 정권'을 외치며 여야의 대치만 계속될 뿐이다. 개헌을 위해 윤 대통령은 열린 자세로 정치적 상상력을 갖고 야당과의 협치는 물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한국은 1980년대 이후 제3의 민주화 물결의 기수였지만 지난 수년 동안 제3의 민주주의 후퇴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역사적 기회로 삼아 제4의 민주화 물결을 선도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의 역사적 평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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