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3대 개혁(교육·노동·연금)에 의료개혁을 더한 윤석열 정부의 4대 개혁 가운데 그나마 순항하고 있는 게 교육개혁이다. 그중 늘봄학교 정책은 당초 계획을 1년 앞당겨 올해 2학기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하기로 했는데, 정책의 광범위성(국내 초등학교는 6,200곳에 육박)이나 일정 단축의 과단성을 감안하면 준비 작업은 원활한 편이다.
사실 늘봄학교 확대는 관련 업무 전가를 우려한 교사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됐던 정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서울 서이초 교사 순직을 계기로 교단에 교권보호 요구가 들불처럼 번졌을 때 정부가 적극 교권침해 방지책을 마련하고 국회 입법을 지원하면서, 양자 간에 일종의 라포르(상호신뢰)가 형성됐고 이는 늘봄학교 추진 과정의 마찰을 줄이는 윤활유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정부 입장에서 서이초 사건은 예기치 못한 비극이었지만, 정부가 이후 상황을 관리하며 늘봄학교 확대 추진력을 높인 건 정책적 수완이라 평가할 만하다. 교사 집단행동에 강경 대응하려던 방침을 금세 철회한 것이나, 늘봄학교와 학교 교육은 철저히 분리 운영하겠다며 교단의 반발 조짐을 가라앉힌 것이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영국 싱크탱크 '애덤 스미스 연구소'의 매드슨 피리 소장은 저서 '미시정치'(1988)에서 성공적인 정책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념과 가치라는 '거시정치'는 그것을 정책으로 구현하는 '미시정치'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사라는 것.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피리가 미시정치의 성공 사례로 든 건 1980년대 영국 대처 정부의 노동정책, 특히 국영 탄광 폐쇄에 반대하는 광산노조 총파업을 진압한 일이다. 전임 정부들이 줄줄이 실패한 노조 약화 정책을 대처 정부가 완수해낸 비결로, 피리는 ①사전 입법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 ②노조원에 비밀투표 통한 노조 정책 결정권 부여 ③형사 기소 대신 민사소송으로 대응한 것을 꼽았다. 특히 ②는 민주주의 대의에 부합해 노조 지도부가 거부할 수 없었을뿐더러 강경 투쟁에 미온적인 기층 노조원의 여론을 드러내는 효과를 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지금의 진통은 미시정치의 부재를 빼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4년 전 전임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은 의사들 반발과 코로나19 대유행에 실패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의정 간 '코로나 안정화 이후 재논의' 합의로 여지를 남겼고, 윤석열 정부는 그 덕에 취임 이듬해인 지난해 초 증원 재추진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산하 전문위원회에서는 참석 위원 10명 전원이 증원에 찬성하며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할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했다. 여론도 절대적 호응. 그럼에도 의료개혁의 첫 단추라던 의대 증원은 이제야 겨우 내년치만 꿰어졌을 뿐이다.
2,000명, 의대 증원을 지지하던 전문가들마저 아연케 한 저 파격적 숫자가 일차적 패착이겠지만, 4년 전 집단진료 거부로 증원 정책을 좌초시켰던 전공의들과 라포르 형성부터 하지 않았던 게 그에 못잖은 실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환자는 의료접근성을, 정부는 저수가를, 병원은 고수익을, 의사는 고소득과 면허 보호를 얻는 암묵적 동맹'(천관율)에 기반한 한국 의료체계를 고강도·저임금 노동으로 떠받쳤던 존재가 전공의였으니, 정부는 '노동자 보호'라는 명분으로도 충분히 이들을 챙기며 우호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