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빈곤 퇴치 운동가
'그라민은행' 설립, 평화상 수상
약 27억 원 횡령·자금세탁 혐의 기소
"하시나 총리 정적 여겨져 정치 보복"
방글라데시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83)가 횡령 혐의로 기소됐다. 그가 노동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불과 반년 만이다. 올해 초 5번째 집권에 성공한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독재 행보를 강화하며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사법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누스 “당국으로부터 괴롭힘 당해”
13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검찰은 전날 경제학자이자 인권·사회운동가인 유누스를 기소했다. 검찰은 그가 1996년 세운 이동통신사 그라민텔레콤의 사원복지기금 중 2억5,220만 타카(약 27억 원)를 동료 13명과 횡령하고 자금을 세탁했다고 봤다.
유누스는 취재진에 “이번 혐의와 무관하다”며 자신과 동료가 당국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의 변호인 압둘라 알 마문 변호사는 “정부가 횡령을 입증할 근거는 단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현지 법원은 다음 달 15일부터 관련 재판을 시작한다. 동남아시아 전문 매체 베나르뉴스는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최대 12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누스는 빈곤층에 소액을 무담보로 빌려주는 ‘그라민은행’을 설립해 수천만 명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어로 시골이라는 뜻이다. 유누스가 설계한 ‘그라민 모델’은 빈곤 퇴치의 대안으로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됐고, 국제사회는 그에게 ‘소액신용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의 아버지’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그가 2007년 정계 입문 의사를 밝히고 여당에 맞서는 정당 창립을 시도하면서 방글라데시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가 시작됐다. 2011년에는 자신이 세운 은행 총재직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노동법 위반 실형 반년 만 기소
정부 견제도 이어졌다. 2013년에는 탈세 의혹으로 세무 당국 조사를 받았다. 올해 1월에는 현지 법원이 그가 노동법을 위반했다며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그라민텔레콤이 사원복지기금을 만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세계 지도자급 인사와 노벨상 수상자 100여 명은 방글라데시 정부에 “사법적 괴롭힘을 중단하라”는 공개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유누스의 지지자들은 이번 혐의 역시 ‘정치 탄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가 올 초 5선에 성공한 하시나 총리의 정적으로 여겨지면서 미움을 산 까닭에 각종 재판에 휘말리게 됐다는 의미다.
유누스는 이달 4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하시나 정부가 방글라데시를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일당(one-party)’ 국가로 만들었다. 경쟁자를 모두 제거한 집권당은 만연한 부패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때문에 정부가 보복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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