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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외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희귀한 동물을 선물하는 건 2000년도 더 된 외교 관행이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의 실력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기린을 선물한 것이 기원전 46년이다. 당나라의 측천무후가 일본으로 판다 한 쌍을 보낸 건 685년이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일본으로부터 코끼리를 받은 기록이 있다. 이색 동물은 타국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친근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도움을 준다.
□ 동물 외교가 반드시 성공했던 건 아니다. 942년 거란이 세운 요나라는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낙타 50마리를 선물했다. 그러나 왕건은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금수의 나라’로 여겨 낙타들을 굶겨 죽였다. 이후 거란은 고려를 침략했다. 일본 코끼리도 너무 많은 콩을 먹고 구경 온 사람까지 밟아 죽이는 바람에 섬으로 유배됐다. 중국이 미국 태국 대만 등 전 세계로 보낸 판다도 숨질 때마다 그 책임을 둘러싼 공방이 일고 있다.
□ 2020년 한국에서 태어나 국민적 사랑을 받아온 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가 쓰촨성에서 다시 공개되기까지 학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동물 외교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중국이 판다를 보낼 때 임대 형식을 취하고 임대료를 받는 게 과연 적절한지도 논란이다. 옮겨진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 동물 외교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 윤석열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 중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알라바이(Alabay) 강아지를 선물받았다. ‘중앙아시아의 셰퍼드’로 불리는 알라바이에 대한 자부심이 큰 투르크메니스탄은 알라바이 국경일을 제정하고, 논란에도 6m 높이 황금 동상까지 설치했다. 들판에서 양 떼를 돌보던 충성스러운 개로, 다 자라면 키가 1m, 체중도 70㎏ 안팎에 달한다.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는 알라바이를 한남동 관저에서 직접 기르겠다고 한다. 이 경우 대통령 부부의 반려견은 8마리로 늘어난다. 반려묘 5마리도 있다. 이미 입양한 셈이니 사랑으로 돌보는 게 마땅하나 알라바이에게 맞는 환경과 관리법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동물 외교의 순기능은 살리고, 선물이 짐이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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