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 작가의 [다시본다, 고전2]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곤조곤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작품이든 전체 텍스트를 조건 짓는 맥락이 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 버지니아 울프의 독특한 판타지 소설 ‘올랜도’(1928)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소설이 전기 형식을 표방하고 전기 작가가 소설에 등장해서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럴 리 없다. 소설에서 영국의 귀족으로 태어난 남성은 100년쯤 뒤에도 30세이다가 다시 여성으로 변해서 200년 넘게 살지만 그래도 겨우 36세밖에 되지 않는다. 소설은 1600년대 초, 그러니까 엘리자베스 1세 말기에 시작해서 20세기 초인 1928년 10월 11일까지의 기록이다. 당연히 영국 역사의 현장과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에 대한 묘사나 대화 내용에는 영국 사회 구조와 역사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 있다. 울프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고 경쾌하고 유머스러울 뿐 아니라 대단히 낙천적이다. 수다스러운 사람이 말하는 듯한 천연덕스러운 과장이 웃음 짓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소설 앞부분에는 영국 최고의 추위를 기록했던 1606~1607년 대빙기의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강의 얼음 두께는 36m나 되고 새들은 공중에서 날아가다 얼어붙어 돌멩이처럼 땅에 뚝뚝 떨어졌으며, 젊은 시골 여자가 길모퉁이에서 차가운 돌풍을 맞아 얼어붙었다가 가루가 되어 한 줌의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동성 연인에게 쓴 '긴 연애편지'
울프 자신도 이 작품을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여성 동성애와 관련된 섹슈얼리티를 암시하며 영국 사회를 비판하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 소설이 당대에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물 묘사와 사건에 대한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소설 시작 부분의 ‘색빌웨스트에게’라는 문구에서 찾아야 한다. 비타 색빌웨스트는 울프와 동성애 관계였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알고 있던 색빌웨스트의 아들은 이 소설을 자신이 본 ‘가장 긴 연애편지’라고 규정했다. 그들의 관계와 사건들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소설 형식으로 쓰인 애정 표현으로 읽힌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올랜도’는 1600년대 초에 태어난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변했고 1928년에도 겨우 36세인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해 색빌웨스트도 36세였고 주인공 올랜도가 귀족인 것처럼 색빌웨스트도 귀족 출신이다.
소설 속의 올랜도는 처음부터 여성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남성으로 묘사된다. 그의 외모에서 전통적인 남성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색빌웨스트 사진과 비교해 보면, 올랜도의 외모에 대한 찬탄은 색빌웨스트에 대한 것으로 읽어도 무방해 보인다. 올랜도는 특히 다리가 아름다운 남성으로 묘사되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도 받았는데, 여왕은 그의 다리 중 가장 가느다란 부분에 훈장을 달아준다. 당연히 이는 역사적인 사실과 다르다. 이런 식으로 울프가 동성애적인 암시를 담았던 것이다.
올랜도는 '남성복을 입은 여성'으로 보아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여성으로 변한 뒤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옷이 우리를 입는 것이지 우리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 남자 올랜도와 여자 올랜도는 의심의 여지 없이 같은 사람이다. (...) 그들이 똑같은 옷을 입었더라면 세계관도 동일할 것이다."
이런 문장에는 이중의 목적이 담겨 있다. 젠더 문제는 본성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서사적으로는 동성애 스토리임을 암시한다. 영국에서 동성애는 남성의 경우에만 범죄로 취급되었다. 여성의 동성애는 아예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없는 것이니 범죄로 규정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여성의 자율성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에 대해 무지했다. 무지했던 것이 아니라 무시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공개적으로 동성애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분위기를 통해 암시하는 방식으로 동성애를 표현했다. 소설의 마무리에 등장하는 올랜도의 남편도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며, 올랜도는 그 점이 결혼의 성공 비결이라고 여긴다.
'저택 물려받는 여성'으로 영국 사회 비판
소설의 첫 번째 중요한 에피소드는 배신당한 첫사랑에 대한 것이다. 올랜도는 철없던 어린 시절에 러시아 공주인 사샤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사샤는 올랜도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연애 경험도 많아 보인다. 첫사랑에 눈이 먼 올랜도는 그런 상황을 분명히 보지 못한다. 올랜도는 사샤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기로 약속했지만 사샤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소설의 뒷부분에는 사샤가 뚱뚱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울프가 색빌웨스트의 ‘다른 애인’에 대한 질투심과 상실감을 작품 속에서 통쾌하게 복수하는 이야기로 읽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색빌웨스트는 다른 애인과 사랑의 도피를 계획했지만 실패로 끝난 적이 있다.
울프는 여성으로 변한 올랜도가 가문의 저택을 물려받게 한다. 이는 색빌웨스트가 여성이었기에 그가 생활하며 성장한 저택을 물려받지 못하고 사촌에게 넘겨야 했던 아픔을 달래 주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여성으로 변한 뒤 저택으로 돌아온 올랜도를 맞이하는 하인들은 그를 남자 올랜도와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내용이 색빌웨스트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던 모양인지 특별히 고마움을 표현한 내용이 남아 있다. 다만 이런 스토리의 목적이 위로가 전부일 리는 없다. 여성의 지위를 폄하하는 영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이면의 맥락은 문장에 담긴 이중적인 의미를 읽어내는 즐거움을 주지만, 설사 모른다고 해도 이야기에 담긴 사회적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읽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울프의 세련된 글솜씨에 비로소 공감할 수 있었다. 문학사에서는 울프의 대표작으로 대개 ‘댈러웨이 부인’(1925)과 ‘등대로’(1927)를 꼽는다. 이 작품들에도 의식의 흐름과 결합된 다양한 이미지의 변화를 담은 문장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른바 대표작들을 읽으며 느꼈던 내용과 형식, 스타일의 답답함을 '올랜도'를 읽으며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많은 이에게 영감 주며 연극·영화화
'올랜도'에는 여성의 글쓰기를 위한 고민도 잘 드러나 있다. 남성의 언어로는 여성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올랜도는 오래전부터 만들어져 사용된 남성의 언어가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른다며 절망한다. 이런 식이다.
"하늘은 파랗고 풀은 초록이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은 1,000명 성모 마리아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베일처럼 보였다. 풀밭은 마법에 걸린 숲에서 털북숭이 사티로스의 포옹에서 달아나기 위해 아가씨들이 도주하듯이 흐릿해지고 침침해졌다."
올랜도에게는 하늘이 파랗고 잔디가 초록이라고 말하려 할 때마다 고전 신화나 종교가 만들어 주입시킨 전통적인 이미지가 자신의 관점인 것처럼 떠오른다. 그는 자연을 자연스럽게 보지 못하고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전통적인 표현에 갇혀 있다. 그 규정이나 이미지들이 설사 ‘거짓된 것’이라 해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잘 전달되는 것이 올랜도가 겪는 모순이자 고민이다.
'올랜도'는 연극과 영화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특히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성향의 성소수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성정체성이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이분법으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영화는 샐리 포터 감독에 틸다 스윈턴이 주연한 1992년의 동명 작품일 것이다. 이 영화의 이미지들은 소설의 텍스트를 상상력을 통해 생생하게 살려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올랜도 역을 맡은 스윈턴은 이 소설이 자신의 환각적인 전기 같다고 했다. 까다로운 평론가이자 소설가였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올랜도'를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영어로 쓴 최고의 작품 목록'이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작품 목록'에 등장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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