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망진상규명위에서 실체 확인
법원 "국가는 유족에게 배상해야"
1980년대 작전전투경찰순경(전경)으로 복무 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21세 청년이 있었다. 당시 그의 사망 원인은 '연애 문제'로 알려졌으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고참들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한 위자료 소송에서 승소했고, '애인의 변심' 때문에 목숨을 끊었다는 누명을 썼던 고인은 38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9단독 강신영 판사는 1986년 전경 복무 중 사망한 A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2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청구액 5,000만 원 중 3,000만 원을 인용했다.
A씨는 스무 살이었던 1985년 군에 입대해 전경으로 배치됐다. 그는 이듬해 9월 소속 전경대 건물 옥상에서 몸을 던져 숨졌다. 당시 경찰은 "애인의 변심과 가출로 충격을 받아 자살한 것"이라며 '변사' 사건으로 종결하고, 유해를 화장했다.
A씨의 가족은 경찰의 결론을 믿기 힘들었다. 경찰은 '여자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아 괴롭다'고 적힌 A씨의 메모가 발견됐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보여주지 않았고, A씨의 지인들도 그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입대한 후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어, 가족은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진상은 2022년에야 드러났다. A씨 형의 신청으로 재조사에 착수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시위를) 진압하다 밀리면 군기가 빠졌다고 집합해 기동대 버스에서 맞았다"는 A씨 동기와 후임병의 증언을 확보했다. 전경대 내의 가혹행위가 극단적 선택의 진짜 이유였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경찰과 군당국은 A씨에 대한 어떠한 변사기록도 보존하고 있지 않았다. 진상규명위는 서울경찰청 측에 "A씨가 연애문제로 자살한 것으로 적시한 근거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런 근거가 없다는 회신이 돌아왔다. 이를 토대로 진상규명위는 A씨의 순직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A씨는 순직 결정을 받게 됐지만, 이어진 소송에서 정부 측은 "위자료까지는 지급할 수 없다"고 버텼다. 군인이나 경찰공무원이 직무 중 숨져도 유족은 보상금만 받을 수 있을 뿐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이중배상금지' 원칙이 근거였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사망 이후 '후속 조치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는 가능하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전투경찰인 A씨가 직무 집행과 관련해 순직한 경우와 관련된 손해배상 청구가 아니므로, 국가배상법 단서가 적용되는 경우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은 사고 경위에 대한 면밀한 조사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함에도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개인적 문제로 신변을 비관해 자살했다고 서둘러 사건을 종결하고 시신을 화장했다"며 "이로 인해 A씨 유족의 이해관계가 침해됐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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