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희애 인터뷰]
드라마 '돌풍'서 타락한 정치인 연기
배우 김미숙과 팽팽한 권력 싸움
'엄마' 역할 갇히지 않은 42년 차 배우
"출산, '밀회' '윤희에게' 허들 넘었다"
연기 원동력은 ①과몰입 금지
②일상과 균형 ③멈추지 않기
“드라마에서 여자들 싸움은 머리끄덩이 잡거나 남자를 가운데 놓고 싸우는 이미지잖아요. 시대가 바뀌었는데 이런 건 그만해야죠.”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희애(57)의 말이다. 그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정치 드라마 ‘돌풍’에서 대통령을 꿈꾸는 국무총리를 연기했다. 김희애와 그의 정적인 대통령 비서실장 역의 배우 김미숙은 온갖 정치 전략과 음모를 동원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인다. 현실 정치에서도, 드라마에서도 권력을 향한 두뇌 싸움은 늘 남성 몫이었지만, 두 여성 배우는 허를 찌르는 반격과 팽팽한 기싸움으로 극을 이끈다. “이런 그림(여성들의 권력 싸움)이 너무 늦게 나왔죠.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한 작품은 다 문제작이에요”
김희애는 또래 여성 배우들과 다른 길을 걸었다. 그가 결혼한 1990년대에는 주연으로 활약하던 20대 여성 배우가 결혼과 함께 은퇴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녀 양육에 전념하다 중년에 엄마 역할로 복귀하곤 했다. 42년 차 배우이자 20대 두 아들을 둔 엄마인 김희애는 엄마 역할에 갇히지 않았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지 몰랐어요. 닥쳐온 어려운 허들도 있었는데 그냥 넘었어요. 무서워서 피했다면 다음 기회가 안 왔을 텐데, 마다하지 않아서 다음으로 계속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허들은 출산. 어린아이들을 두고 일터에 나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둘째 아들 출산 2년여 만에 드라마 ‘아내’(2003)로 복귀했다. 40대 여성과 스무 살 연하 남성의 격정적인 사랑을 다룬 JTBC 드라마 ‘밀회’(2014) 출연도 파격이었다. 종합편성채널 개국 초기라 톱스타들이 출연을 꺼리던 때였지만 그는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처음으로 동성애를 연기한 영화 ‘윤희에게’(2019), 부산 사투리를 쓰는 사업가로 나온 영화 ‘허스토리’(2018) 역시 도전이었다. “‘허스토리’ 때 부산 사투리를 연습했는데 누구는 마산 사투리라 하고 누구는 울산 사투리라고 해서 정말 힘들었어요. 잘 때도 사투리 녹음을 틀어놓고 잤죠.” 어색한 사투리 연기로 ‘강제 은퇴’당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둘 만큼 압박감이 심했지만 그의 사투리는 호평받았다. JTBC 역대 드라마 시청률 1위인 ‘부부의 세계’(2020)를 비롯해 김희애는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들이 다 “문제작이었다”고 말했다. “편하고 쉬운 역할만 했다면 ‘돌풍’의 총리 역할은 저한테 안 왔을 거예요. 극적인 인물들을 많이 맡아서 재미있었고, 대리 인생을 충분히 즐겼어요.”
“여러분, 멈추지 마세요”
아직도 좋은 대본을 받으면 떨리고, 현장에서 다른 배우의 훌륭한 연기를 보면 소름이 돋을 만큼 감동받는다는 김희애. 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작품 하나하나에 연연하거나 과몰입하지 않는다. ‘돌풍’도 세 번이나 볼 만큼 애정하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배우 생활 처음 할 때는 작품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는데 그게 거듭될수록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좋지 않았어요. 하나하나 다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되도록 빨리 지우려고 해요.”
그래서 작품이 끝나면 일상에 집중한다. “연기는 제 직업이고, 일이 끝난 후엔 일상을 잘 살아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생활하는 김희애는 매일 아침 1시간씩 자전거 타기와 스트레칭 등 운동을 빼놓지 않는다. 10년 넘게 영어학원을 다닐 만큼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고 피아노도 배운다.
비결은 또 있다. “멈추지 않았던 게 가장 중요했다 싶어요. 예전엔 일이 생활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일은 너무 소중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힘이에요. 일을 하면서 살아있는 걸 느껴요.” 그는 인터뷰 현장에 있던 기자들에게도 당부했다. “여러분도 멈추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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