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 번씩 열리는 서울 도서전은 열릴 때마다 대흥행을 한다. 문체부가 예산을 삭감해도, 이전에 열렸을 때보다 더 작은 공간을 써야 해도, 정치적 이슈가 생겨도. 어떤 이들은 도서전에 사람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 말한다.
"아니, 이렇게 도서전에 오는 사람이 많은데 책은 잘 안 팔리는 거야? 출판계는 단군 이래 언제나 불황인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도서전은 기본적으로 축제이며 테마파크이다. 사람들은 매년 열리는 이 축제에서 출판사들이 신경 써서 만든 부스에 오는 것이 좋다. 출판사들은 부스를 열려고 큰돈을 썼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부스에는 온갖 콘텐츠들이 있다. 꽤 많은 것들이 인스타그래머블하다. 도서전에 들른 김에 책을 서너 권쯤 산다. 그 정도만 해도 이미 일반적인 한국 성인의 연간 도서 구매량을 아득히 상회한다. 작가들의 사인도 받을 수 있으니 기쁘다. 몇 달 뒤, 인터넷 중고서점에 사인본을 판매할 수 없다는 가혹한 비밀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평소에는 책을 안 살까? 아마도, 사람들이 책이란 매체를 신성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왠지 1년에 책을 몇 권 읽으면 교양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그 해에 읽은 책의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앱에 읽은 책을 꼬박꼬박 기록한다. 어떤 사람은 매일 책을 조금씩 읽는 것이 부자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사실 나도 인스타그램에 읽은 책을 한 달에 열 권 정도 전시한다.
사람들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바일 게임을 한다. 하지만 '캔디 크러쉬 사가'를 자기가 얼마나 잘하는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은 적다. 모바일 게임이나 쇼츠 같은 문화는 사람들에게 신성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삶의 일부다. 그리고 그렇게 지극히 당연한 문화야말로 가장 잘 팔리는 것이다.
일 년에 하루쯤은, 책이라는 비일상적이고 엄숙한 문화의 세계로 빠져들 만하다. 그래서 도서전은 잘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장이 잘되려면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책을 읽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냥 서점에서 재밌어 보이는 책을 사고 읽는다. 나무위키 문서를 읽듯이 논픽션 도서를 읽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무료 웹툰을 매일매일 즐기듯이 픽션 도서를 읽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책을 신성하고 엄숙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독서자들이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공고해져 온 책이라는 매체의 엄숙함을 완화하려는 시도는 몹시 어려운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게 가능하기나 한지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독서하는 사람들과 책을 쓰는 사람들과 책을 만드는 사람들 중 책이라는 매체가 엄숙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책을 엄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나는 돈을 잘 못 벌지만 우리 아버지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어쨌든 내가 꼬박꼬박 책을 써내지 않았더라면 그냥 식충 취급을 받았을 텐데, 책은 그 엄숙함으로 내게 최소한의 상징자본을 부여했다. 나로서는 감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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