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 작가의 [다시본다, 고전2]
브라질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장편소설 'G.H.에 따른 수난'
편집자주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에 대해 다시 조곤조곤 얘기해 봅니다. 1993년 등단한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배수아 작가와 출판 편집 기획자 출신 강창래 작가가 한국일보에 격주로 글을 씁니다.
새로운 종류의 여행법을 나는 독일 베를린 서가의 주인에게서 배웠다. 그것은 죽은 작가와 책을 향해 떠나는 여행, 여행을 통한 읽기이다. 그의 여행이 책이나 작가, 혹은 예술작품으로부터 유발되지 않은 경우란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의 브라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우리는 상파울루 공항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그는 내게 한 권의 책을 건넸다. 내가 거기 있으므로, 거기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했다. 이유는 그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작가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제목의 책이었다. 첫 페이지에는 짧은 작가의 말이 있었다. 그 첫 문장은 이랬다.
“이것은 수많은 다른 책들과 다르지 않다.”
이 문장이 초대인 동시에 경고라는 것을, 이 문장으로 작가는 책을 봉인했으며 독자는 스스로 봉인을 뜯고 그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을, 그것은 곧 독자 스스로 피를 흘려야 한다는 의미임을, 책을 다 읽은 다음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다”니, 그건 말처럼 항상 간단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홀린 듯이 빨려 들어가 단숨에 마지막까지 읽게 되는 책도 있겠지만, 그와 완전히 반대의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G.H.에 따른 수난'과 같은 책.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G.H.에 따른 수난'과 관련한 내 독서 경험을 말하지 않기 위해서 애쓴다. 그것과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아무에게도 이 책을 “권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어로 이 책을 번역하기까지 했으나, 나는 이 책을 단 한마디라도 대리할 수 없다. 이 책은 그 어떤 중개, 전달, 해설, 간접독서도 불가능하다. 이 책은 피를 흘리며 읽지 않은 자에게 영원히 봉인된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여전히 한국 독자들에게 낯선 이름일까? 적어도 2015년 내가 상파울루 공항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만큼 완전히 낯선 이름은 아니리라고 나는 감히 추측해 본다. 그사이 두 출판사에서 책이 여러 권 번역 소개되었고, 적어도 클라리시의 독자됨을 이미 정신에 잠재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를 만났으리라고 생각한다.
극한의 고립 속에 탄생한 소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1920년 12월 우크라이나 유대인 부모의 세 번째 딸로 우크라이나 서부의 포돌리아에서 태어났다. 클라리시 가족은 당시 우크라이나를 휩쓴 포그롬(유대인 인종박해)을 피해 고향을 떠나 떠도는 입장이었고 어머니인 마리에타는 내전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러시아 군인에게 강간당해 매독에 걸려 몸이 마비되어가는 상태였다. 섭씨 영하 20도에 이르는 혹한 속에 사방에 굶주림과 질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학살을 피해 달아나는 난민 가족의 매독 걸린 어머니의 몸에서 클라리시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엄청나게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행운은 그뿐이 아니었다. 리스펙토르 부부와 세 딸은 병든 몸에도 불구하고 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한 부모 덕분에 수만 명이 죽어가는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와 1922년 브라질행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브라질의 가난한 북동부 지역 헤시피에 정착한 리스펙토르 가족은 새로운 브라질식 이름을 얻고 이후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한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클라리시는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후아나라는 여성 주인공의 내적 감정에 강하게 포커스를 맞춘 첫 장편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발표했고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읽자마자 즉시 그가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그때까지 조이스나 울프를 읽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외교관인 마우리와 결혼하여 외국으로 떠났고 두 아들을 얻었으나 1959년 클라리시는 아이들과 함께 리우로 되돌아왔다. 그가 남편을 떠난 큰 이유 중 하나는 외교관의 아내라는 틀에 박힌 역할의 삶을 벗어나 작가로 살기 위해서였다.
귀국 후 그동안 쓴 작품을 출판할 출판사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두 아들과의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클라리시는 분투했다. 그는 외국에 있을 동안에도 소설을 발표하며 작가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이름이 되어 있었지만, “출판사들은 그녀를 전염병처럼 기피했다”. 그의 작품이 당시 브라질 문학의 중요가치였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속하지 않고, 그렇다고 소시민 계층의 마음을 끄는 대중적인 드라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재 브라질에서 그가 “여성 카프카”라는 타이틀을 달고 현대 브라질 문학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난해한 작가라는 명성은 클라리시의 생계에 별다른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유난히 예민하던 큰아들의 조현병 판정은 어머니로서 견디기 힘든 절망이었다. 거기다 시인 파올로 멘데스 캄포스와의 사랑이 원치 않는 결별로 끝나게 되면서 클라리시는 더욱 고립되어 갔다. 당시 브라질은 매우 보수적인 남성중심적 사회였고, 이것은 문학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1977년까지는 브라질에서 이혼이 합법이 아니었다. 그는 만성적인 불면과 불안에 시달렸다. 담배와 수면제 없이는 살지 못했다. 존재의 불안은 곧, 어쩌면 글을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궁극의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힘든 시기인 1963년 말에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한 편이 탄생했다.
옷장에서 발견한 공포의 반전
이제 나는 ‘G.H.에 따른 수난’의 줄거리를 요약해보려고 시도하겠지만, 심지어 어떤 독자들은 그걸 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 줄거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모순이다. 클라리시의 언어는 비선형적이고 패러독스인데, ‘G.H.에 따른 수난’은 클라리시 언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언어를 통한 비종교적인 영성이다. 클라리시의 전기를 쓴 벤저민 모세르(BENJAMIN MOSER)는 그의 불가해고도 초자연적인 언어의 기원을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에서 찾는다.
아마도 문학사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작품 목록이 있다면 그 상위에 오를 것이 분명한 'G.H.에 따른 수난'은 브라질에서 1964년 출간되었다. 이 책은 단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다. 첫 문장에서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오직 단 하나의 목소리뿐이다! 세계는 단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그 목소리는 G.H.라는 이니셜을 가지며 그것은 여행가방에 새겨져 있다. 우리는 책의 마지막까지 목소리의 초월적인 독백을 듣지만, 심지어 그 목소리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까지 우리가 아는 것은 G.H.가 여성이며, 한때 조각가였고, 마지막 연애가 종말을 고한 다음이며, 그 자신을 반영하는 아름다운 리우데자네이루의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는 것뿐이다.
어느 날 아침 G.H.는 전날 집을 떠난 가정부의 방을 치우려고 들어간다. 그렇게 이 책은 시작된다. 가정부의 방 옷장을 열던 G.H.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과 마주친다. 충격에 떨던 G.H.는 생전 처음으로 “죽이고 싶은 욕구에 흠씬 취하여” 그 욕구를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그것은 죽지 않는다. 죽지 않고, 몸속의 흰 내용물이 고름처럼 비져나오는 가운데, G.H.의 눈앞에서 “문 밖으로 툭 튀어나온 몸통 절반을 앞쪽을 향해 와락 내민 채“ 살아있다. "허공으로 몸을 불쑥 세운 여인의 반신상처럼.“ 이 순간 G.H.는 그것의 얼굴을 본다. 그것의 눈을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놀랍게도 자기 자신과의 심원한 연결을 발견한다. 존재와 언어의 심연이 열린다.
'G.H.에 따른 수난'을 읽고 나서 내게 처음 든 생각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에는 이 책을 기다리는 독자가 분명히 있다, 심지어 이 책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면서 이 책을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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