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 연작소설 '제저벨'
편집자주
인공지능(AI)과 로봇, 우주가 더는 멀지 않은 시대입니다. 다소 낯설지만 매혹적인 그 세계의 문을 열어 줄 SF 문학과 과학 서적을 소개합니다. SF 평론가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해 온 심완선이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듀나의 연작소설 ‘제저벨’의 이야기는 불친절하다. 독자는 작중 세상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이곳은 독자들이 경험하는 현실 세계와 수많은 접점을 가지지만, 현실의 지식은 책을 읽는 데 크게 쓸모가 없다. 책을 펼치면 이야기꾼이 말을 시작한다. “우리 선장이 로즈 셀라비와 한판 붙은 이야기를 해줄게.”
로즈 셀라비는 20세기에 주로 활동한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사용했던 이름 중 하나다. ‘샘’으로 유명한 뒤샹은 화장실 소변기를 그대로 가져다가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미술대회에 제출했다. 이는 평범한 대량 생산품을 본래의 기능에서 해방해 예술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시도였고, 현대미술의 대표작이 되었다. 뒤샹은 자신에게도 다른 이름을 붙여 성격을 바꾸려고 시도했다. 로즈 셀라비는 명백히 여자 이름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저벨’에 이런 배경 설명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배경지식은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필요하지도 않다. 고유명사에 하나하나 신경 쓰기 시작했다간 독자는 소설에 압도되고 만다.
‘제저벨’을 읽으며 잘 모르는 세계에 즉각 매혹되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요크셔푸딩’을 커스터드푸딩과 비슷한 맛이리라고 상상했던 시절이었다. 외국 소설을 탐독하다 보면 정체불명의 이름을 잔뜩 만날 수 있었다. ‘버터밀크’는 버터 맛이 나는 고소하고 향긋한 우유일 것만 같았다. 실제 버터밀크는 버터를 만들기 위해 유지방을 쏙 빼고 남은 우유를 일컫는다.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시시했다. 레몬 젤리, 딸기주, 흰 빵은 이제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주로 영미 소설을 예로 들었지만, 이런 매혹은 서구 중심주의라고 부르긴 애매하다. 마카롱과 파르페는 얼마든지 로쿰과 바클라바, 사모사와 아마룰라로 대체될 수 있었다. 이것들은 내가 경험한 세계 바깥에서 온 이름이었다. 경계 너머에 무언가 방대하게 펼쳐져 있다는 증거였다. 옛날 사람들은 지도를 그리면서 끄트머리를 바다 괴물로 장식했다. 1510년에 만들어진 어느 지구본은 ‘미지의 위험’을 ‘히크 순트 드라코네스(Hic sunt dracones)’라고 표기했다. ‘여기에 용이 있다’는 뜻이다. 용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 존재한다.
‘제저벨’은 설정상 ‘링커 우주’ 작품군에 속한다. 우주를 잠식한 링커 바이러스는 어느샌가 지구에 도달한다.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군체는 감염 대상에게 폭발적인 변화를 야기한다. 지구의 생명체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극히 다양하게 진화한다. 제저벨호의 ‘선장’은 곰인형 모양으로 태어났다. ‘의사’는 20세기 지구에 존재했던 영화배우 프레드 아스테어처럼 생겼다. 어찌 보면 ‘의사’는 실제 아스테어보다 더욱 진짜에 가깝다. 흑백영화 속에서 아스테어는 항상 회색이었다. 영화 밖에서는 컬러로 존재했을 배우와 달리 ‘의사’는 정말로 회색이다. 소설 속에서 ‘아자니’나 ‘올리비에’는 배우가 아니라 우주를 돌아다니는 기계 생명체의 이름이다. 듀나는 정말이지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매혹에 푹 잠겨본 사람이야말로 현실을 압도하는 허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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