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의 목탁, 정상훈씨 퇴임 인터뷰]
위원회 난국마다 내부 게시판에 시 남겨
위원장·위원 비판한 시도 실명으로 게시
"핀다. 꽃이 핀다. 봄을 알리려 겨울잠 깨라 꽃이 핀다. 그러나 여긴 다시 찬 바람 분다. 다시 겨울로 돌아가려 한다. 진달래 꽃망울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봄과 쭉정이)
지난달까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었다가 이달부터 민간인이 된 정상훈(60)씨. 그는 18일 기자를 만나자 공책 세 권을 내밀었다. 두툼한 공책 속엔, 2002년 5월 그가 인권위에 처음 들어와 지금까지 쉼 없이 써온 시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인권위 출범이 2001년 11월이니 그는 조직의 창설 멤버다.
정씨가 남긴 시는 사적으로 느낀 감흥이나 서정을 담은 게 아니다. 바로 인권위가 지난 22년 동안 겪은 희로애락이 소재다. 조직을 보며 시상을 가다듬은 거다. 인권위가 조직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그는 상황을 기가 막히게 비유한 시를 남겼고,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인권위의 저항시인'이라고 불렀다. 위에 나온 시 '봄과 쭉정이' 역시 출범 23년 만에 최대 내분 사태를 맞은 인권위 상황을 '겨울'에 빚대 올해 쓴 작품이다.
그는 왜 지금을 인권위의 겨울이라 했을까. 현재 인권위에선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 등 인권위원 6명이 의결 방식 변경을 요구하며 전원위원회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정씨는 "내부 갈등으로 직권조사가 무마되는 등 인권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 상황이 가장 최악"이라며 비판했다.
"2011년 1월 16일 마지막이길 바라며 또 한 사람 수십 미터 상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머물고 있는지 반년이 훌쩍 지났다. 스스로 올랐지만 스스로 오른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이름은 비-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정씨는 인권을 위해 현장을 돌고 뛰었던 열혈 조사관이었다. 초임 때 침해조사과로 배정받은 정씨는 사회 곳곳에 감춰진 인권 침해 상황을 밝혀내고자 했다. 민주정부로 바뀌긴 했지만 국가기관 곳곳에 군사정권의 잔재가 남아 있던 상황이었고, '정부 내의 야당' 역할을 하며 동료 공무원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인권위란 존재가 어색하던 시절이었다.
사회 운동에 공감을 표시한 시도 남겼다. 2011년 8월 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에선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 올라 정리해고 철회를 주장하며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이야기를 담았다. 2007년 1월에는 '사필귀정'을 통해 군부독재 정권이 지식인들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감는다. 눈은 있으되 보지 않는다. 무엇이 진실인지 애써 외면한다. (중략) 하여 거울에 비친 몰골 흉측하기만 하다."
(우리 안의 괴물)
위원장이나 상임위원 등 수뇌부를 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용산 철거현장 화재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 등 현안에 침묵했다는 비판을 받는 현병철 전 위원장(2009~2015년 재임)에 대해선 '우리 안의 괴물'을 썼다. 지난해 6월과 9월에는 '내가 인권위원이라면' '편지' 등을 통해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에게 쓴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이러한 비판시는 모두 내부 게시판에, 정씨의 이름 석 자와 함께 공개됐다. 정씨는 "익명으로 시를 쓰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각종 권고를 주저 없이 해야 할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 하고 흘러가기만 할까 봐 시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한 동료 직원은 그의 시를 두고 "내부 비판은 자칫하면 거친 언어로 나올 수 있는데, 시에는 엄선된 단어만이 사용됐다"며 "짧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가 모두에게 큰 울림을 줬다"고 말했다.
정씨는 시를 통해 인권위 동료들을 향해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 22년간 어려움도 많았지만, 든든한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며 힘을 얻을 수 있었다"며 "어려운 지금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업무를 이어 나가는 직원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거침없이 권고할 수 있는 인권위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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