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휴가나 출장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지갑, 가방을 노린 소매치기나 도둑이 해외에서 부쩍 기승을 부리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영국 런던의 경우 6분에 1대꼴로 휴대폰 도난 사고가 일어난다. 그 바람에 여권을 함께 도둑맞아 낭패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전시회나 사업 등으로 해외에 나갔다가 여권을 잃어버린 기업인들의 하소연을 여러 번 들었다. 그들의 공통적인 하소연 중에 긴급 여권 발급 비용 문제가 있다.
해외에서 여권을 도난당하거나 분실하면 방문국의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긴급 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문제는 현장에서 지불해야 하는 몇만 원에 해당하는 긴급 여권 발급 비용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호주 등 여러 나라의 한국대사관에서는 이를 현금으로만 받는다. 외교부에 물어보니 각 대사관이 세금 납부나 시설 문제 등 현지 사정에 따라 신용카드나 현금 수령을 알아서 결정한다.
요즘은 해외여행을 갈 때 트래블월렛처럼 환전 수수료 없는 체크카드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신용카드라도 있으면 현금을 찾아서 낼 수 있지만 그마저도 도둑맞았으면 난감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이 경우 외교부에서는 신속해외송금 서비스를 통해 여권 신청 시 긴급연락처로 표기한 한국의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 외교부 계좌로 발급 비용을 대신 내주는 방법을 안내한다. 그렇지만 긴급연락처에 포함된 사람이 여행을 가거나 회의나 강의 등 사정에 따라 전화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외교부에서는 아직까지 신속해외송금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 사례가 없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발급 비용을 현장에 있던 타인이 내준 사례도 있다.
발급비를 내지 못하면 긴급 여권을 발급받기 힘들다. 선불제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외국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국제 미아가 될 판이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긴급 여권 발급 비용을 한국에 돌아와 납부하는 후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돈이 있으면 선불로 내고 그럴 수 없으면 귀국 후 따로 납부하는 것이다. 어쨌든 국민을 국제 미아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차피 긴급 여권은 단수여권이어서 귀국 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못한다. 결국 돌아와 여권을 재발급받아야 한다. 이때 긴급 여권 발급 비용을 함께 청구하거나 기한을 정해놓고 따로 받으면 된다.
외교부에 후불제 의견을 물었더니 수수료를 후불로 받는 공공 민원 서비스가 없고 수수료 정산이나 체납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돈을 내지 않으면 구상권 청구나 일반여권 정지 및 발급 제한 등 여러 가지 불이익으로 제재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도와 법을 바꿔야 해서 쉽게 결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외교부 의견이다.
현실적 어려움과 제도적 문제 때문에 후불제를 도입하기 어려울 수 있더라도 국민이 불편을 겪으면 정부에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해외에서 여권을 잃어버려 절박한 상황에 놓인 국민에게 선불제만 고집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처럼 보일 수 있다. 얼마 되지 않는 발급 비용 때문에 국민의 안위가 뒷전으로 밀린 느낌이다. 정부는 그곳이 어디든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외교부의 존립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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