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 외국인 가사 노동자 도입 코앞
외국인 저임금 정책, 장기 해법 안 돼
권익·인권보호, 외국인 정책 원칙 돼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0.72, 그리고 1,000만.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위기를 상징하는 통계다. 전자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고 후자는 지난 10일 주민등록상 확인된 65세 이상 인구 수다.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라고 부를 정도의 위기적 상황이라, 백가쟁명식 해법이 쏟아져 나온다. 산업구조를 인적자원 중심에서 첨단과학기술 기반으로 바꾸자, 임신과 출산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혁신하자, 청년세대와의 공존을 고려한 정년연장을 하자….
그런데 이런 해법들은 대체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즉각 효과가 나는 방안으로, 부족한 생산가능인구를 외국인으로 메꾸자는 제안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40만 명 안팎으로 전체 인구의 5% 수준이다. 인구의 10~20%를 이민자가 차지하는 선진국들에 비하면, 진입 문턱을 조금 낮추더라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만도 하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인력정책은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을 일시적으로 활용하는 고용허가제와 연구∙기술 등 전문 외국 인력의 정주화를 유도하려는 외국인 전문인력제로 크게 나뉘어 있다. 공장, 식당, 비닐하우스, 축사에서 우리 경제의 하부를 떠받치고 있던 저숙련 외국인들이 이제는 안방과 거실로 들어온다. 9월부터 필리핀 여성 100명을 가사노동자로 고용하는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그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비용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는 여성들의 부담을 덜어줘 출산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사업 논의 초기에는 더 많은 양육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주자는 주장까지 나왔으나, 노동계 반대로 시범사업에서는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그래도 시장에 형성된 임금보다 20% 낮다.
찬반 논란이 격렬했지만 정부는 저임금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겠다는 뜻을 포기하지 않을 모양새다.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과 별개로 정부는 국내에 있는 외국인이 가정과 직접 계약을 맺어 가사도우미로 활동하는 사업을 9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이 사업에선 외국인 가사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노동법도 적용받지 못한다. 대상도 5,000명이나 된다.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지만, 이는 명백한 퇴행이다. 3년 전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돼 가사노동자들이 68년 만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게 됐는데, 저임금 외국인 가사노동이 만연하게 되면 이런 노력은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과 임금에서 내국인과 외국인 간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정부도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협약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다. 선진국이 되면 지켜야 할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을 자국 내 ‘소비자 편의’라는 명목으로 피해 갈 때의 국가의 위신 추락을 정부는 모른 척하겠다는 건지 궁금하다.
기본권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값싼 외국 인력 도입’으로 인력 부족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장기적으로 인력 수급 문제의 위험성을 높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홍콩, 대만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외국 인력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면, 우리나라의 외국인 저임금 전략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주노동자들과 이웃으로 살기 위해서는 진정한 이웃으로 대할 태도를 갖는 것이 먼저다. 인구학자 서울대 이철희 교수의 지적대로 ‘국제사회 기준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외국인의 권익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외국인 인력정책의 원칙이 돼야 한다. 한국을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국가로 만드는 것, 당장은 부담이 되지만 그것이 지속 가능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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