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에 선 K의료: ②의대 증원 정책 보완 포인트]
원가 이하 수가에 행위별 불균형 누적
인구 감소에 건보 재정 대규모 적자 예정
"지방 의료에 국가적 투자 필요한 시기"
편집자주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발표하며 의료개혁 기치를 올린 지 6개월. 의대 정원이 내년부터 대폭 늘어나 의사 인력 부족 해소의 전기가 마련됐지만, 전공의와 의대생의 이탈로 촉발된 의료공백은 의료체계를 보다 지속가능하도록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내외 의료현장 취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의료개혁 성공 조건과 보완 과제를 점검한다.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단번에 해결할 묘책이 있다. 획기적인 수가(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의료 행위의 대가) 인상이다. '응급실 뺑뺑이'나 의사들의 수도권 집중 등 의료계의 고질적 난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지만 건강보험 재정 상태를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의료계에서는 저출생·고령화로 적자가 예정된 건강보험 재정에 의존하는 현 의료체계가 근본적 한계에 봉착했다고 지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고 투입 확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 수가제도는 개별 의료 행위마다 단가를 정해 지급하는 '행위별수가제'가 근간이다. 지불의 정확도가 높은 게 장점이지만 진료를 늘릴수록 수익도 커져 '3분 진료'를 불렀다. 진료 종류나 양과 관계없이 질병군별로 사전에 책정한 금액만 지불하는 '포괄수가제'가 2013년 백내장과 맹장 수술 등 7개 질병군에 도입됐으나 전체 수가의 10% 수준이다.
행위별수가를 도출하는 '상대가치점수'의 불균형도 필수의료의 존립을 위협한다. 상대가치점수는 의료 행위별 가격을 뜻하는데, 수술·입원·처치료는 저평가된 반면 영상·검사 분야는 고평가돼서다. 가령 영상·검사는 원가의 108% 수준인데, 외과 수술은 원가 대비 80%대 초반이다.
복지부는 올해 2월 수립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토대로 진료량이 아닌 진료의 질·가치 중심 수가체계로 전환을 추진한다. 필수의료 보상 강화를 위해 상대가치점수 조정, 보완형 공공정책수가 확대, 대안적 지불제도 도입 등을 제시했는데 의료계에서는 "아랫돌 빼 윗돌 괴는 격"이라고 지적한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배분 방식을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는 이유다. 정부가 2028년까지 필수의료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한 10조 원+알파(α)도 결국은 건강보험 재원이다.
그간 의료 시스템을 지탱한 건강보험 재정이 위태로운 것도 우려를 키운다. 김윤희 인하대 의대 교수 추계에 따르면 올해 소득의 7.09%인 건강보험료율이 매년 2.09%씩 인상된다고 가정해도 올해부터 적자가 시작돼 2042년에는 적자 규모가 83조 원으로 예상된다. 지난 2월 기준 약 28조 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도 2028년이면 모두 소진된다. 초저출산 속에 보험료를 내는 경제활동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는데 의료비 지출이 큰 노령층은 큰 폭으로 증가해서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 의존에서 탈피해 정부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고 촉구한다. 올해 5월 초 복지부가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강희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십 년간 건강보험 재정 중심 대응이 한계에 봉착해 국가의 지원 없이 지역 의료인력 양성과 정주 여건 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지역 의료체계는 지역 경제의 기반이기도 한 만큼 국가적 투자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지난 23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다음 달 말까지 의료개혁 4대 과제 관련 법령 개정안과 함께 과감한 재정투자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지난한 의정 갈등 와중에 나온 재정 투입 확대 방침이다. 2007년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정부는 해당 연도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재정으로 지원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매년 13~14% 지원에 그쳤다.
나백주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을지대 의대 교수)은 "그동안 수가를 올리거나 내려서 의료 공급을 늘리고 줄이는 식으로 건강보험 정책을 유지했지만 인구가 감소해 의료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어려운 지방에서는 이게 작동하지 않는다"며 "지역·필수의료는 철저히 준비해 재정 방식으로 가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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