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펀드' '예스펀딩' 판 깔고
민음사 같은 대형 출판사도 동참
"수요 예측·사전 홍보 목적"
"이 책을 원하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3,256쪽, 총 7권. 학계의 외면을 받아 온 한국 근현대 여성문학사 100년을 짚는 첫 시도인 '한국 여성문학 선집' 출간을 앞두고 출판사 민음사는 고민에 빠졌다. 여성문학사연구모임의 12년 공력과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선집'에 대한 수요 예측이 안 됐던 탓이다. 염려 끝에 민음사는 처음으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을 통한 '북펀드'를 진행하기로 했다. 알라딘의 여성 독자 분포가 높은 만큼 타깃 독자층을 노린 계산이었다는 게 민음사 측 귀띔. 지난달 출간 한 달여 전 진행한 북펀딩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주 만에 목표 금액의 9배를 모았으며, 사전 홍보 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최근 출판계에서는 독자들이 원하는 책에 투자해 출간을 돕는 북펀딩이 유례없이 활발하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뿐 아니라 알라딘, 예스24('예스펀딩') 등 온라인 서점이 판을 깔고, 대형 출판사까지 너도나도 펀딩에 나서면서다. 출판 시장은 규모가 작고, 유통 기간이 길어 펀딩 활성화가 어려운 분야로 인식돼 왔지만 어느새 자리를 잡은 것이다.
북펀딩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알라딘이다. 알라딘에 따르면 7월 기준 완료됐거나 진행 중인 '북펀드'는 158건이다. 지난 한 해 진행된 총건수(171건)를 벌써 육박한다. 민음사의 '선집'을 포함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3세트'(까치 발행),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양장 세트-전 6권' 등 양서들이 올해 '북펀드'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북펀딩은 독자와 출판사, 작가까지 공존동생을 도모한다. 독자가 좋은 책을 먼저 알아보고 선투자-선구매한다는 가치 투자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알라딘 '북펀드' 역시 '좋은 책에 투자하는 당신의 안목'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알라딘 관계자는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신간이 출시되는 도서 시장에서 마케팅이 집중되는 베스트셀러에 밀려 널리 알려지기 어려운 책을 알려 보고자 하는 고민에서 '북펀드'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초창기 영세 출판사가 출간 자금을 모으던 방편이었던 북펀딩은 최근 수요 예측이나 홍보 차원에서 활용되는 사례가 많아졌다. 캐시 박 홍의 시집 '몸 번역하기' 출간을 앞둔 도서출판 마티도 그런 경우다. 마티는 2021년 각 언론사의 '올해의 책'을 휩쓴 '마이너 필링스' 저자 박 홍의 시집으로 알라딘 '북펀드'에서 펀딩을 받고 있다. 서성진 마티 편집자는 "(사회·예술·건축 분야 책을 주로 만든 마티에서) 첫 순문학, 그것도 워낙 시장이 좁은 현대 영시 책을 내게 됐으니 독자들이 덜 뜬금없게 느끼도록 작가의 이름으로 이 책을 먼저 알리고 소개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북펀딩은 좋은 책을 만날 수 있는 보물찾기 창구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지만, 출판계 일각에서는 북펀딩이 보편화되면서 "흥미나 입소문의 힘이 초기보다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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