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의선. 갓의선.
최근 아프리카TV로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경기를 볼 때 실시간 댓글창에 자주 떴던 단어다.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을 가리키는 말인데 양궁 대표팀이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5개 전 종목 금메달을 석권한 3일(현지시간)에는 새로운 유행어라 해도 될 정도로 인기였다.
그동안 스포츠 협회장들이 종종 대중의 관심을 받았지만 대부분 엉뚱한 발언이나 행동으로 입방아에 오른 경우였다. 킹(KING), 갓(GOD)을 붙여 치켜세우는 말은 흔치 않았다. 특히 재계 서열 3위(공정거래위원회 자산 총액 기준)의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회장은 더욱 그렇다. 황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인물에게 대중은 선뜻 박수를 보내지 않으니 말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스포츠 협회장에 이름을 올린 역사는 꽤 길다. 그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종목을 직접 고르거나 주변 요청을 받아들이되 협회가 모셔와 추대하는 식이었다. 인기 종목을 뺀 대다수 경기단체의 살림이 넉넉지 않기에 재정 지원이 가능한 기업인이 체육단체장을 맡으면 협회로선 감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몇몇 총수들이 협회 운영을 멋대로 하고 그 과정에서 잡음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큰일이 터질 때마다 책임지기는커녕 돈 한 푼 받지 않는 자신이 왜 비판받아야 하냐며 당당하게 버틴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이 대표적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홍명보를 국가대표팀 감독에 앉히는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축구협회와 정 회장이 일 처리를 얼마나 엉망으로 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파리 올림픽 예선 탈락이라는 충격의 성적표는 협회와 협회장 때문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축구협회는 지난해 3월엔 승부조작 등에 연루된 비위 축구인 100명을 기습 사면하려다가 큰 망신을 당했고, 비판이 거세지자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회고록 '축구의 시대'를 내고 "K리그 다른 구단주에 비하면 축구를 많이 이해한다고 자부한다"며 자화자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의선 양궁협회장의 행보가 주목받는다. 양궁 경기 때마다 뙤약볕에서 캐주얼 차림으로 선수들을 응원하는 그의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선수, 코치들은 인터뷰 때 늘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메달도 걸어줬다. 그런데도 정 회장은 모든 공을 선수와 코치들에게 돌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 될 일을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선수·코치진과 소통하려 애쓰고, 더 지원해야 할 건 없는지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선수 선발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20년 넘게 협회장을 맡으며 이를 실천하려 애썼고 그 결과는 선수들의 올림픽 메달로 이어졌다. 양궁협회는 국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고 있다. 이는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의 발언 이후 위기에 빠진 대한배드민턴협회와는 대비를 이룬다.
올림픽이 끝난 뒤 스포츠협회의 운영을 찬찬히 뜯어보고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협회장의 역할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것이다. 스포츠협회는 더 이상 돈 많은 기업인이 자신을 뽐내는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 수많은 선수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꿈을 키워 나가는 데 힘과 용기를 북돋우는 편안한 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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