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편소설 아시나요?]
안보윤 단편소설 '양지맨션'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누구에게나 가족이 부끄러운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우리 가족’과 비슷한 집에서 비슷한 밥을 먹으며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산산조각 날 때가 그렇다. 한 사람을 이루는 세계의 전부이자 기준이었던 가족의 결핍이나 결함을 마주하며 겪는 성장통은 상실감을 넘어 때론 수치심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격렬하다.
소설가 안보윤의 단편 소설 ‘양지맨션’(자음과모음 2024 여름호에 수록)의 주인공인 초등학생 ‘연수’는 친구 ‘이랑’의 집에서 이런 순간을 마주한다. 이랑을 포함해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각자의 방을 가지고도 공간이 남아도는 큰 집과 출근하지 않는 이랑의 엄마까지. “너네 엄마는 왜 집에 있어?”라는 연수의 질문에 이랑은 오히려 되묻는다. “너네 엄마는 집에 없어? 왜?”
이랑의 엄마와 달리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연수의 엄마는 밤 아홉 시에나 귀가한다. 아빠가 대학원 연구원으로 있던 대학이 망하고, 사기까지 당하면서 연수의 가족은 복도식 아파트에서 빌라인 양지맨션 301호로 집을 옮겼다. 이사 이후로 엄마는 연수에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자 동네와 빌라촌 사이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고 둘러대라고 당부한다.
일상이 된 가난의 존재감을 느껴가는 연수와 이랑에게는 ‘부자 동네와 빌라촌 사이’와 같은 위계가 생겨난다. 이랑이 다니는 학원과 피아노 수업 사이에 비는 시간마다 급작스레 불려 가거나 쫓겨나는 연수는 이랑의 집 커뮤니티 센터에서 고약한 장난을 당해도 “괜찮다”며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 아빤 사실 박사님”이라고 말한 연수가 그럼 부모님이 교수냐는 이랑의 질문을 애매하게 넘긴 건 위계에 저항하려는 나름의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양지맨션’은 그러나 가족의 결핍 자체가 부끄러움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을 짚는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이랑의 엄마가 연수의 엄마에게 “부모님이 두 분 다 대학교수시라고 들었다”라고 물었을 때. 거짓말을 질책하는 대신 부드러운 표정으로 “애가 영 맹탕이라 교수랑 교사도 구분 못 한다”고 답하는 엄마를 보며 연수는 짙은 모욕감에 시달린다. “엄마가 자신의 거짓말에 더해 또 다른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학교 교사인 척했다는 것이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엄마의 거짓말은 “연수네 가족의 삶이 부끄럽다는 뜻”이었기에.
소설을 읽으며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밝힌 청소년이 온라인에 쓴 글이 떠올랐다. 친구의 집에서 반찬 접시가 정갈하게 놓인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고 귀가한 그는 바닥에 상을 펴놓고 반찬통채로 밥을 먹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다. 친구의 집과 자신의 집을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인식하면서도 엄마에게 “혼자 맛있는 거 먹고 와서 미안해”라며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성장통이란 모두에게 불가피하지만 아주 오래가지는 않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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