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정치권 논의 이어져
"전례 고려해 유산 지정" 촉구
국가유산법 개정 필요성 제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울 마포구 동교동 사저가 민간에 매각되자, 이를 국가문화유산(문화재)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고 이희호 여사가 37년간 머물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흔적이 깃든 사저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9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상속세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이 상당하다며 동교동 사저를 100억 원 상당에 매각했다. 매입자는 커피프랜차이즈 업체 대표인 사업가로 알려졌다.
김 전 의원은 국가유산 지정 등 사저를 보존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그는 전날인 8일 CBS 라디오에서 "4년 전 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지만, 김 전 대통령 퇴임 전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었기 때문에 지은 지 50년이 넘어야 한다는 규정을 맞추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대통령실이 나서야"
시민단체와 야권 등에선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8일 대통령실에 공문을 보내 "이승만, 박정희,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된 전례를 고려하면 동교동 사저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대통령실이 신속히 나서 국가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민위 관계자는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회로부터 '한동훈 대표와 대통령실에 김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인 8월 18일 전에 문화재 지정이 이뤄지도록 추진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전남도의회와 광주전남김대중재단 등도 "동교동 사저는 현대사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는 장소인 만큼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할 공간이 아니"라며 "국가적 차원에서 매입해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조성 보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대표적인 동교동계 인사인 이낙연 전 총리가 중심인 새로운미래 역시 5일 동교동 사저 앞에서 현장 책임위원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병훈 전 민주당 의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우선 국가유산청이 사저를 근현대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면 서울시 등 관련 기관이 개발 행위를 유보하고, 이후 국가 또는 서울시가 해당 부지와 건물을 재매입하면 된다"며 "정부의 보존 의지가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50년 제한 풀어야" 주장도
이처럼 국가유산 등록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현행법 개정 필요성도 제기된다. 문화유산법에 따르면, 국가등록문화유산은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 중 보존 및 활용 조치가 필요한 것으로 제한돼 있다. 그러나 유산의 가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만큼 해당 조항을 개정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송기태 목포대 교양학부 교수는 "50년이라는 기준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며 "시간과 관계없이 지역 사람들이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면 유산으로 지정해 지속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예비문화유산 제도 활용도 거론된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근현대문화유산법에 따르면, 50년이 지나지 않은 건축물도 문화유산으로 등록 가능하다. 지자체가 건축물을 우수 건축자산으로 등록하면 국가유산청이 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의지만 있다면 예비문화유산 제도를 통해 유산으로 등록할 수 있다"며 "어떤 방식을 취하느냐의 문제일 뿐, 50년이라는 기준 때문에 유산 등록이 안 된단 얘기는 핑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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