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제국주의 일본이 '아름다운 시대'라는 일본 보수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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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 일본 사회의 ‘전전’과 ‘전후’는 다르다
일본 사회에서 ‘전전(戦前)’과 ‘전후(戦後)’는 매우 중요한 역사 구분이다. 외부에서 일본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관점일 뿐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전전’과 ‘전후’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전쟁 이전을 뜻하는 ‘전전’은 대체로 20세기 초부터 1945년 원폭 투하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배하기까지의 시기를 뜻한다.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급속한 서구화, 근대화가 추진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국주의와 국가주의가 강하게 대두되었다.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과 군수산업을 바탕으로 일본은 대륙 침략과 식민지 자원 확보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는 애국 교육도 철저히 이루어졌다.
반면, 패전 이후 지금까지를 가리키는 ‘전후’에는 과거와 결별한, 전혀 다른 종류의 사회가 형성되었다. 패전 이후 미군 점령하에서 군대 보유를 포기한 평화헌법이 제정되었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법으로 명시한 민주주의적 법률 체계도 도입되었다. 군수산업 외의 제조업이 급성장하면서 시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졌고, 개인주의와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대중문화도 발달했다.
‘전전’과 ‘전후’가 극적으로 달라졌다고는 말하지만, 사실 사회가 한순간에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 사회 곳곳에 여전히 ‘전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1945년 패전을 계기로 일본 사회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상적 지향점을 발견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전’은 군국주의, 국가주의, 애국주의가 지배했던 시대였다면, ‘전후’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평화주의, 민주주의,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추구해 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전’과 ‘전후’라는 시대적 구분의 의미를 잘 알 필요가 있다. 이 두 시기의 역사적 맥락이 오늘날 일본 사회의 정치적, 사상적 지형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아름다운 시절’ VS ‘암흑의 시대’: 전전에 대한 상반된 평가
일본의 우파(보수 세력)와 좌파(진보 세력)는 ‘전전’에 대한 인식에서 결정적으로 다른 관점을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전전’이라는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점에서 우파와 좌파의 사상적 지향점이 갈린다고도 할 수 있다.
우파는 ‘전전’을 ‘아름다운 시절’로 회상한다. 일본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고, 강력한 자주국가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던 시대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당시의 제국주의적인 팽창 전략도 긍정적인 것으로 해석된다. 서구 열강에 맞선 자위적인 조치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였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아시아 지역을 전근대에서 해방시키려 한 행동이라고 정당화한다. 이들은 ‘전전’ 일본의 강한 군사력과 군사 정책을 긍정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결과적으로 전쟁 범죄나 식민지 지배의 부정적인 측면도 최소화한다.
반면, 좌파의 평가는 정반대이다. ‘전전’을 민중들의 인권과 자유가 철저하게 무시된 ‘암흑의 시대’로 생각한다. 당시 일본 군부가 주도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일본을 파멸로 이끌었으며, 이로 인해 수많은 아시아인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여긴다. 군부의 억압과 통제에 고통받은 것은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좌파가 보는 ‘전전’의 ‘교육’은 국가주의적 프로파간다의 도구에 불과하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박탈했다고 보는 것이다.
동일한 시대에 대한 평가가 ‘아름다운 시절’과 ‘암흑의 시대’로 극명하게 갈린다. 역사적 사안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생각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 정도로 정반대의 평가가 공존하는 상황은 범상치 않다. 예를 들어, 일본의 극우 세력은 평화헌법의 전쟁 금지 조항을 폐지하여 일본을 ‘전전’처럼 자주적인 군사 능력을 가진 ‘정상적’인 국가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태평양전쟁의 전범들을 ‘국가의 위인’으로 재평가하자는 주장도 제기한다. 이들은 일본을 ‘전전’과 같은 강력한 국가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 반면, 좌파에게 ‘전전’은 절대로 회귀해서는 안 되는 악몽 같은 시절이다. 비록 외세(미 점령군)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전후’에 도입된 새로운 법 체계가 평화주의와 민주주의를 국가의 근본 원칙으로 삼은 것을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특히, 전쟁 포기를 명기한 평화헌법은 ‘전전’의 과오를 반성하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과거사를 둘러싼 인식의 혼란은, 지금 일본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책임을 축소하려는 역사수정주의가 주변 국가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고 있으며,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주장도 불거진다. 이런 주장들의 근저에는 일본의 좋았던 시절인 ‘전전’에 대한 동경이 깔려 있다. 결국 ‘전전’에 대한 평가가, ‘전후’ 일본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이다.
◇ 의아한 역사 논쟁: 왜 한국 정부가 일본 우파를 대변하는가?
한국 사회에서도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정치적인 해석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에 대해서만큼은 좌우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 왔다. 한일 간 역사 문제로 갈등이 있을 때도, 특정 사안의 해법에 있어서는 시각차가 있을지언정,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한반도의 주권을 강제로 침탈한 불법적인 점령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일은 없었다. 이는 역사의 피해자인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시각이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의 민중은 식민 지배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인들이 처한 가혹한 현실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된 가장 현실적이고 절실한 이유였다. 한국 사회가 일본의 ‘전전’을 ‘암흑의 시대’로 인식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평가라기보다는 민족의 생존과 주권 회복을 위한 절박한 투쟁 경험에서 우러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 논쟁은 당혹스럽고 황당하다. 공적인 인사가 나서서 ‘대한제국이 일제시대보다 행복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던가, ‘친일 행위가 반민족 행위는 아니’라는 등 일본의 식민 지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을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른바 뉴라이트 역사관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 시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사상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감안해 어느 정도 관용해 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한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제시된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공연한 왜곡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공유해 온 역사적 인식과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일본의 ‘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본의 우파의 주장을 식민 지배의 피해국 정부가 나서서 옹호하고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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